[여자월드컵] 4년간 여정 마친 벨호, 아쉽게 끝난 '고강도' 도전
"50대50 싸움서 자꾸 졌다"…벨 감독은 끝까지 고강도 필요성 강조
(브리즈번=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콜린 벨 감독이 이끈 한국 여자 대표팀이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선전을 목표로 달려온 4년간 여정을 마쳤다.
대표팀은 2019년 프랑스 월드컵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전패한 직전 대회와 달리 이번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에서는 FIFA 랭킹 2위 독일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뒀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번에도 조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느꼈다.
벨호가 고전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실수와 불운이 겹쳤다.
콜롬비아와 1차전에 나온 실점이 모두 실수라고 볼 만한 장면에서 나왔다.
경기 초반 상대를 압도한 대표팀은 상대 슈팅이 심서연(수원FC)의 팔에 맞았다는 판정이 나와 분위기가 꺾였다.
이에 따른 페널티킥으로 먼저 실점한 대표팀은 전반 39분에 나온 골키퍼 윤영글(BK 헤킨)의 뼈아픈 실책 탓에 0-2로 몰렸다.
린다 카이세도의 중거리 슛이 정면으로 향했는데 이를 제대로 쳐내지 못해 공이 골문으로 흘렀다.
모로코와 2차전도 킥오프 직전 핵심 수비수 임선주(인천 현대제철)가 갑작스러운 종아리 통증으로 이탈하는 불운이 닥쳤다.
수비가 헐거워진 벨호는 임선주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선제 실점했다.
매 장면을 뜯어보면 단순 실수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도 포착된다.
선수들이 월드컵 수준의 치열한 몸싸움·경합을 좀처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카이세도는 중거리 포로 득점하기 전 하프라인에서 가속하며 김혜리(인천 현대제철)를 순식간에 벗겨내 슈팅 기회를 잡았다.
경기 시작 6분 만에 나온 모로코전 선제 실점도 문전으로 쇄도하는 즈라이디와의 경합에서 홍혜지(인천 현대제철)가 밀리면서 나왔다.
무섭게 밀고 들어오는 즈라이디에게 공간을 선점당하자 홍혜지가 뒤늦게 어깨싸움을 시도했지만 그대로 넘어졌다.
경기 시작 6분 만에 선제골을 만든 독일전에는 상대의 '공중 공격'을 막지 못했다.
스베냐 후트가 오른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자 독일의 골잡이 알렉산드라 포프가 몸싸움 끝에 김혜리를 제압한 후 헤딩으로 마무리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대회 내내 측면 공격수들이 상대 풀백들과 속도 싸움에서 밀리며 슈팅 기회를 자주 내지 못한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순발력·주력·완력·높이 등 세계 무대에 나선 팀들과 운동능력 격차가 여실히 드러난 월드컵이 된 것이다.
대표팀이 패한 팀들은 모두 FIFA 랭킹 20위 밖이다.
이런 팀들과도 '피지컬 격차'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여자축구의 발전 속도에서 뒤진 게 아닌지 따져볼 만한 대목이다.
팀의 간판인 지소연(수원FC) 역시 콜롬비아, 모로코전을 마치고 취재진에게 "50 대 50 (경합) 싸움에서 자꾸 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나이지리아(40위), 자메이카(43위), 남아프리카공화국(54위) 등 우리보다 랭킹이 훨씬 낮은 팀도 16강 진출을 이뤘다는 점은 되짚어볼 만하다.
이 팀 선수들은 빠른 발을 자랑하면서도 격렬한 신체 충돌을 불사하는 등 유럽 팀에 뒤지지 않는 운동능력을 보여줬다.
점점 잦은 스프린트와 격렬한 몸싸움이 등장하는 여자축구의 흐름에 가장 경각심을 느낀 사람은 벨 감독이다.
이번 월드컵 기간 유럽 팀 지도자들의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고강도'로 번역되는 하이-인텐서티(high-intensity)다.
최고 속력으로 올리거나 전력으로 상대와 부딪치는 등 선수에게 체력·정신적 부하가 가해지는 활동을 총칭한다.
이 단어는 2019년 부임한 벨 감독이 지향하는 '슬로건'이자 대표팀을 운영하는 '지도 철학'으로 자리잡았다.
벨 감독은 모로코전 패배로 16강 탈락이 유력해지자 한국 여자축구 '전면 개혁'을 주장하며 "지겹도록 '고강도'를 이야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강도라는 세계적 흐름을 우리나라에 이식하려 한 벨 감독의 야심 찬 기획은 일단 월드컵 무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3일 독일전을 끝으로 월드컵 일정을 마친 벨 감독은 "이제는 미래를 봐야 한다"면서도 다시 고강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벨 감독은 "강도 높은 경기를 치르며 빠른 속도를 보여주지 못하면 현대축구에서 기회를 얻을 수 없다"며 '고강도 축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진할 뜻을 내비쳤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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