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특집 마대산 계곡산행] 조선 최고의 인플루언서 김삿갓 생가를 품은 산
영월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드디어 영월읍에 들어섰을 때 색다른 풍경이 차창 밖에 펼쳐졌다. 구불구불한 동강을 둘러싼 둥그스름한 산봉우리들! 영월에 사는 어떤 위대한 왕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위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던 산봉우리들이 꼭 왕 앞에 줄지어 선 가신들처럼 보였다.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나는 "와!" 감탄했다. 옆에서 이신영 기자가 말했다.
"영월, 이렇게 멋있는데, 제 주변에서 '우리 영월 가자!'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어요."
"우리 속초 가자" "우리 강릉 가자" 혹은 "우리 부산 가자"는 어쩐지 익숙한데, 영월은 이렇게 발음하는 게 낯설다는 것이다. 그럴싸했다. 이신영 기자가 뭔가 깨달은 듯 다시 소리쳤다.
"아! '우리 동강 가자!'는 좀 괜찮은데요?"
그것도 그럴싸했다. 동강 래프팅, 동강 트레킹, 동강국제사진제 등 앞에 동강을 붙인 이름들이 줄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것은 영월과 꽤 멀리 떨어진 서울에 사는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수 있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서 확인해 보니 영월에 유입되는 국내 전체 지역 인구 중 충북 제천, 강원도 원주, 강원도 정선에 사는 사람들이 반을 차지한다. 그러니까 제천, 원주, 정선 사람들은 "우리 영월 가자"는 말이 입에 붙었을 것이다. 그래도 영월군 입장에선 살짝 고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강 말고 영월에 어떤 것이 더 있어야 멀리 사는 사람들을 여기까지 끌어올까? 연구 꽤 할 것 같은데, 그 결과물로 보이는 관광 홍보물을 영월에 들어갈 때 차창 밖으로 언뜻 봤다. '영월보감을 찾아왔다면 나이수 투 미추' 굵은 붓글씨체로 쓰인 문구였다. 영월에 사는 권위 있는 어떤 왕이 붓으로 휘갈겨 쓴 센스 있는 초청장 같았달까? 이것은 "오~!" 마음속에 감동의 잔물결을 일으켰고 또 기대감에 들뜨게 했다.
계곡 따라 1시간 30분 "벌써 꼭대기"
우리는 김삿갓면에 있는 마대산(1,052m)으로 가는 중이었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햇빛이 쨍쨍했다. 명랑한 분위기와 달리 도로는 한산했다. 차를 세우고 매점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놀라면서 말했다.
"아침에 장대비가 쏟아졌어요!"
날씨 예보에 겁을 먹고 다들 영월에 오길 포기한 건가? 거리가 다소 썰렁한 이유가 궁금해서 주인한테 또 물어봤다.
"영월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가요?"
주인이 대답했다.
"아니오. 주말에는 북적북적해요. 지금은 휴가철이 아니고 게다가 오늘은 월요일이잖아요.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까지 있어서 그런 걸 거예요."
묘하게 안심됐다. 매점 옆 비탈진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여기부터 곳곳에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김삿갓로' '김삿갓 계곡' 등등. 원래 여기 지명은 하동下東이었다. 김삿갓면으로 이름이 바뀐 때는 2009년 10월이다. 이름을 바꾼 당시 김삿갓문학관을 찾은 관광객이 이전 5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늘었다. 개명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2009년즈음 김삿갓과 관련된 어떤 사건이 일어났던 걸까? 영월군은 왜 갑자기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바꾼 걸까?
인터넷에서 김삿갓 이름이 들어간 뉴스를 찾아봤다. 가장 오래된 소식부터 훑었다. 1990년 3월 20일이 첫 목록에 등장한다. 전남 광주시에서 7억여 원을 들여 김삿갓시비 주변을 정비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김삿갓은 매년 빠짐없이 뉴스에 등장한다. 1996년 3월 한 양조사가 '김삿갓 소주'를 출시했고 불티나게 팔렸다. 이듬해엔 록커 신중현씨가 김삿갓 시에 곡을 붙인 록 앨범을 발표했고, 2001년 4월, 1964년 4월부터 KBS 제1라디오에서 연재됐던 라디오 연속극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37년 만에 끝났다. 2005년 9월엔 김삿갓이 쓴 시 12편도 발견됐다. 2007년에 이르러 김삿갓 탄생 200주년을 맞으며, 이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크고 작은 기념 행사가 열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 발간이 붐을 이룬 것도 이때다. 마침 <소설 김삿갓-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이 나와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김삿갓은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인스타그램 #김삿갓 관련 게시글 숫자는 무려 1만 7,000개가 넘는다.
산행에 함께 따라온 김광명씨에게 물어봤다.
"김삿갓 알아요?"
한문학 박사인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김삿갓의 시를 읊었다.
"물론 알죠.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도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김삿갓이 지었다는 시예요."
뒷좌석 그녀의 옆에서 눈을 끔뻑거리던 목승훈씨에게도 물어봤다.
"김삿갓 알아요?"
"네, 많이 들어봤죠. 그거 노래도 있지 않아요? 삿갓삿갓 하는 거요."
두 사람은 30대 초반, 이들에게도 김삿갓은 낯설지 않다. 그러니까 김삿갓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영향력 최고인 인플루언서, 영원히 죽지 않을 콘텐츠의 왕, 한없이 재생되는 신(갓God)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김삿갓의 생가 터가 마대산 등산로 초입에 있었다.
우리는 차를 김삿갓문학관 주차장에 대고 마대산을 향해 오르막을 올라갔다. 계곡물 소리가 우렁찼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완만했다.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쳤다가 없어졌다가 반복됐다. 꽤 더웠지만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을 콸콸 뱉어내는 계곡 덕분에 시원하기도 했다. 이 정도 계곡이면 중간 중간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을 법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라 그런가? 비 예보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여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가? 마대산은 그래도 유명한 곳이다. 국내의 한 등산 업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등산 도전 프로그램 '명산100' 이외에 '명산100+' 목록에 올라가 있다. 그에 따라 여러 등산 동호인들이 마대산에 올라 정상석 앞에서 찍은(인증) 사진이 인터넷에 수두룩하다.
마대산 정상은 '인증' 명소
마대산이 이처럼 유명해지기 전, 이 산 이름은 맞대산이라고도 불렸다. 박성태씨가 2004년에 발간한 <신 산경표>의 별책부록 '대한민국 산경도'를 보니 '맞대산 1051'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맞대와 마대는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이른바 마대산의 아래쪽은 맛밭麻田이라고 불렸는데, 마대산의 북쪽, 태화산(1,027m) 남쪽의 각동리로 가는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1960~1970년대 맛밭 나루터 인근에선 각종 어물과 소금, 생활 필수품이 거래됐다. 사람이 북적댔을 것이다. 여기에 마전馬田 (조선시대 역참을 운영하기 위한 재원으로 지급된 토지, 고려시대 이웃마을 정양리에 정양역이 있었다고 한다)이 있었는데, 이것이 맛밭, 마대로 변한 것이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람들이 마대산을 재미삼아 올랐을지 의문인데,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올랐던 반대쪽, 옥동리나 대야리에서 등산을 시작했을 것 같다. 지금 마대산 등산로는 와석리 쪽에서 오르는 코스가 유일하다.
이참에 나는 김광명씨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옛날 사람들도 우리처럼 산을 재미로 올랐을까요?"
한문학 박사인 그녀는 최근 자신이 '조선의 하이커'라고 명명한 심노숭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의 여행 스타일을 자세히 알 것이다. 그녀가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런데 지금처럼 정상 등정을 목적으로 하거나 종주를 하지는 않았어요. 주로 산 아래에 머물거나 고개를 이용했죠. 재미있는 건, 조선시대 때 문인 심노숭이 한양에서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때 든 비용이 지금 돈으로 4,000만 원 정도였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놀랐다. 심노숭은 양반이었으니 산에 갈 때 주로 말과 수레, 가마를 이용했을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 여럿 두었을 테고. 그러니 그만한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몇 시간 만에 차를 타고 와서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걷는 우리와 심노숭의 여행 스타일은 차이가 너무 커서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얼마 안 가 계곡을 벗어났다. 물 소리가 줄어들고 등산로가 가팔라졌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에 올라섰다. 나는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반면 목승훈씨는 멀쩡했다. 트레일러닝으로 단련된 근육을 덕지덕지 몸에 두른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갈색 말이었다. 그가 심노숭이 탄 가마를 들고 산을 오르는 상상을 했다.
현생의 그는 나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의 다 올라온 것 같아요. 고도가 지금 800m쯤 되니까. 금방이에요! 힘내세요."
다 왔다는 말에 허벅지에 힘이 생겼다. 성큼성큼 올라가니 안내판이 나왔다. '정상까지 200m'.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10분쯤 가니 마대산 정상이었다. 해발고도 1,000m대 산 치고는 비교적 쉽게 정상에 오른 기분이었다. 소문대로 조망이 시원스럽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정상 분위기를 냈다.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는데, 날씨가 더워 쉬는 기분이 나지 않았다. 금방 일어나 처녀봉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1993년 2월에 작성된 마대산 산행기에는 마대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 맞대마을로 하산했다고 쓰여 있다. 지금 그 방향은 출입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어 갈 수 없다.
우리는 완만한 길을 따라 걸었다. 전망대가 나왔고, 또 금방 처녀봉이 나왔다. 여기부터 김삿갓묘가 있는 초입까지 등산로가 꽤 가팔랐다. 해발고도 1,000m대 산답게 난이도가 있었다. 우리는 다시 시원한 계곡과 만났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내려가다가 작은 폭포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목승훈씨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우리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산행길잡이
마대산에 가려면 김삿갓문학관을 기점으로 잡는 것이 좋다. 차를 대기 편할 뿐 아니라 초입과도 가깝다. 본격적인 산행은 김삿갓 유적지에서 시작된다(김삿갓묘로 가면 안 된다). 초반엔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다가 얼마 안 가 계곡길로 바뀐다. 이후 마대산 정상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따라가면 무리없이 정상까지 갈 수 있다.
김삿갓 주거지를 떠나 0.6km쯤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정상으로 가는 능선이다. 이후 1km 정도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정상부 능선에 이르러서야 길은 완만해진다. 마대산 정상에서 조망은 그리 좋지 않다. 처녀봉으로 가는 중간 능선에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 역시 조망이 시원스럽진 않다. 처녀봉 역시 마찬가지다. 처녀봉에서 다시 김삿갓유적지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마대산 정상 인증이 목적이 아니라면 김삿갓 유적지 부근의 계곡에서 잠시 더위를 피했다가 내려가는 것도 좋다.
교통
내비게이션에 '김삿갓문학관(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22)'을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영월군청 앞 서부시장에서 김삿갓문학관으로 가는 10번 버스를 타면 된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평일과 주말 3회 출발한다.
맛집
영월은 '칡국수'가 유명하다. 고씨동굴 인근에 칡국수촌이 있는데 이 중 고향식당(033-372-9117)이 유명하다. 칡뿌리를 넣어 반죽한 면발 색이 회색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걸쭉하고 구수한 국물맛도 좋다. 감자전을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
영월역 앞에 있는 '다슬기 향촌 성호식당(033-374-3215)'의 다슬기 해장국도 유명하다. 얼큰한 국물과 함께 다슬기 씹는 맛이 좋다. 메인 요리 말고 반찬도 맛있다.
우리가 갔을 땐 굴무침이 나왔는데, 무한으로 리필해 준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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