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해임-후조사’ 방문진 이사진 물갈이 시도…근거도 전례도 없어

안영춘 2023. 8.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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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3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에게 '해임 처분사전통지서'를 보냈거나 전달 절차를 밟고 있다.

언론학자이자 법학자인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문진 이사를 해임하려면 행정절차법상 해임 사유가 발생해야 하고, 사유에 해당하는지 조사돼야 하고, 사유가 확정된 뒤에는 다시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의혹이 제기된 단계에서 해고 절차를 밟는 것은 관련 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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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3일 오전 서울 삼청동 감사원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3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에게 ‘해임 처분사전통지서’를 보냈거나 전달 절차를 밟고 있다. 이는 해임 사유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임 절차부터 착수한 것이어서, 윤석열 정부가 최소한의 법률 절차마저 무시한 채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폭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통위는 권태선·김기중 이사를 해임한 뒤 그 자리를 여권 이사로 채워 현재 여야 3 대 6 구도인 방문진 이사회를 5 대 4 구도로 바꾸고, 이를 토대로 안형준 문화방송 사장 해임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방통위의 해임 처분사전통지서 전달은 지난 2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상인 상임위원이 방문진 두 이사에 대해 해임 절차에 들어가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권 이사장과 김 이사 해임 추진 사유는 문화방송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과 안형준 사장의 ‘주식 명의 대여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방문진 이사회가 안 사장을 선임했다는 것 등이다. 이와 관련해 방통위는 4일부터 방문진에 대한 현장 검사·감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지난해 11월 보수 언론단체의 국민감사청구를 접수한 감사원은 지난달 10일에야 방문진에 대한 본감사에 들어간 상태다. 앞서 방통위는 법인카드 사용의 적절성과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남영진 한국방송(KBS) 이사장에 대해서도 지난달 28일 해임제청 처분사전통지서를 보냈다.

조사에 들어가거나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해임 절차부터 밟는 것은 과거 숱한 공영방송 장악 논란 과정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학자이자 법학자인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문진 이사를 해임하려면 행정절차법상 해임 사유가 발생해야 하고, 사유에 해당하는지 조사돼야 하고, 사유가 확정된 뒤에는 다시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의혹이 제기된 단계에서 해고 절차를 밟는 것은 관련 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인 김성순 변호사는 “민간기업에서도 해임 사유를 명백히 파악하고 있어야 해임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이후 사법적 판단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의 경우 2008년 8월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거쳐 해임 제청을 요구하고, 여야 구도가 바뀐 한국방송 이사회가 해임 결의안을 의결해 이명박 대통령이 해임한 뒤,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까지 했으나, 무죄와 함께 해고 무효 확정 판결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해임된 고대영 전 한국방송 사장,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 강규형 전 한국방송 이사 등은 ‘해임할 정도의 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해고 무효 판결이 확정됐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공영방송 이사들에 대해 법률 절차를 어겨가며 해임을 밀어붙이는 것은 뒤늦게 해고 무효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방송 장악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연주 전 사장 등이 해고 무효 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는 이미 임기가 끝난 뒤였다. 이승선 교수는 “정권 차원에서는 해임이 무효가 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며 “방통위가 대통령 뜻에 따라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게 돼 있는 방통위법의 거버넌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성순 변호사도 “절차와 해임 사유에 초점이 맞춰지는 탓에 공영방송 파괴 행위의 본질을 외려 가리게 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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