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멀리갈 거 있나요?”…도심 속 시민들 이색 피서 ‘눈길’

황병서 2023. 8.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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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휴가 보내는 '스테이케이션族' 각광
만화카페·영화관 등 실내 시설 '북적'
“여행가면 돈만”…워터파크 대신 물놀이터로
관공서에서 '무지출 휴가' 보내기도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여행 계획을 짜기도 귀찮고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교통 혼잡 없이 쉽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치솟는 피서지 물가와 붐비는 인파를 피해 도심에서 휴가철을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ㆍStay와 Vacation 합성한 신조어)이 각광을 받고 있다. 만화카페나 영화관, 박물관 등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피서지들이 주목받고 있는 셈인데, 아예 돈이 들지 않는 관공서 등을 찾는 ‘무지출 피서’를 보내는 사람들도 눈길을 끈다.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의 만화 카페.(사진=황병서 기자)

“괜히 동해 갔다가 짜증만…차라리 만화방에 가죠”

3일 오전 11시께 서울 마포구의 한 만화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4)씨는 복잡한 피서지보다 가까운 만화 카페에서 여름 나기가 실속있다고 말했다. 편안한 자세로 만화책 등을 읽을 수 있는 데다 원하는 시간에 끼니도 해결할 수 있어서다. 김씨는 “친구들과 강릉으로 여행을 가려고 했다가 이런 날씨에 움직였다가는 짜증 지수만 올라갈 것 같아 포기했다”며 “피서철에 바가지 요금을 당하지 않고 지낼 방법을 찾다가 만화 카페에 오게 됐다”고 했다.

김씨처럼 서울 등 도심을 벗어나지 않고도 휴가를 지내는 이들이 많다. 비용은 줄이면서 편안하게 피서를 즐기는 이른바 ‘스테이케이션족’에겐 만화카페 등이 여름철 인기 휴식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물가 속 휴가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사람들과 ‘밖으로 나가면 생고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온 주부 이모(46)씨는 “멀리 가지 않고도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찾다가 오게 됐다”며 “아이는 다락방에서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고 어른들은 음료를 마시거나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돈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심모(23)씨는 다양한 연령층이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래는 친구들끼리나 연인들끼리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족단위로 와서 만화책도 보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서점도 도심 피서지의 명소다. 이날 영등포구 한 대형 서점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손에는 시원한 커피를 들고 서점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 최모(24)씨는 “방학인데 집에만 있기엔 너무 더워서 서점을 찾았다”면서 “밖에 돌아다니기엔 힘들고 시원한 서점이 최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34)씨는 서점을 찾은 이유를 ‘북캉스’로 설명했다. 이씨는 “휴가철에 지인들이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덥기도하고 물가가 비싼 요즘 여행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으며 피서를 즐기는 북캉스가 좋다”며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말했다.

영화관도 평일이지만 이용객들이 많았다. 이날 오후 1시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영화관에 자녀와 영화를 보러 왔다는 주민 주모(45)씨에게 여름휴가 계획을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씨는 “아이들과 원래는 속초로 여행을 갈까 싶었는데 너무 더워서 집에 있기로 했다”며 “그냥 서 있어도 등에서 땀이 흐르니까 어딜 돌아다니는 게 꺼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관도 오고 있지만, 그동안 아이들과 못 가본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도 다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체육공원 내 물놀이터 모습(사진=취재원)
한강으로, 관공서로…“오르는 물가 부담, 여기가 지상낙원”

실내시설뿐만 아니라 지자체 등에서 마련한 행사장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지난주 휴가 기간에 경기 남양주시의 물놀이터를 찾은 김모(32)씨는 “남편, 2살 아들과 올해는 집 근처에 마련된 수영장에서 지난주 휴가를 보냈다”며 “어디를 가든지 돈을 많이 쓸 수밖에 없어서 휴가철에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은 한강처럼 배달도 가능해서, 놀다가 음식도 시켜 먹으면서 쉬려고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백모(31)씨는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한강 페스티벌’을 피서지로 낙점했다. 그는 “올해 결혼을 하는데 돈을 아끼기도 해야 하고 피서철에 여자친구와 여행을 작년에 갔었는데 너무 큰 비용이 깨져서 올해는 가까운 곳에서 지내기로 했다”며 “마침 한강공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서 밤에 한강에 나가서 즐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관공서 등을 방문해 더위를 피하는 무지출 휴가를 보내는 ‘알뜰 피서족’도 있다. 서울시청 내 시민청을 찾은 장모(64)씨는 “날이 더울 땐 부채 하나 들고 시민청에 찾아오면 여기가 지상낙원”이라며 “집에서 에어컨을 틀면 전기료에 아내 눈치가 보여서 이곳으로 나오는 게 마음 편하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인 강모(27)씨는 “혼자 있는 방에서 마냥 에어컨을 틀기엔 돈이 아까워 이곳을 자주 찾는다”며 “노트북을 켜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가난한 취준생 입장에선 최고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휴가 기간에 구청 도서관을 찾는다는 김모(31)씨는 “물가가 너무 오르기도 했고 성수기에 휴가를 가려 하니 부담이 돼서 결국엔 도서관 등에서 쉬기로 했다”며 “도서관은 무료로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기도 하고 시원해서 계속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자친구와 도서관뿐만 아니라 미술관 등도 돌아다니면서 여름 더위를 피해 지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병서 (bshw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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