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는 없지만 살은 튼튼하다?"[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이미연 2023. 8. 4.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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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LH 아파트에서 보강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 사진 연합뉴스
작년 1월 '광주 참사' 사죄 기자회견에 나섰던 정몽규 HDC 회장, 사진 연합뉴스

"뼈(보강철근)가 없어도 근육과 코어(시멘트 강도)가 튼실하니 문제없다는 거냐."

"이번 순살아파트(철근 누락) 사건 전에는 몰랐냐. 새 아파트여도 물 새고 창문 들뜨고 화단 무너지고 점점 엉망으로 지어진지 오래다."

안녕하세요 금융부동산부 이미연입니다. 관련 기사를 한참 쓴터라 이 코너에까지 써야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잡았습니다. 일반 기사로는 담기 어렵지만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보여서 결국 모실 수 밖에 없었거든요. '철근 누락된 채 시공된 LH 아파트'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2023년 8월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 이슈를 모르고 계실 분은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간단 설명부터 시작합니다. 올해 4월이었죠.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의 지하주차장이 무너져 내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나마 건설근로자들이 근무하지 않았던 야간 시간대여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전국민의 두려움이 커지게 만든 시발점이었습니다. 특히 주차장 상부에는 어린이놀이터가 예정됐던터라 입주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후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LH는 붕괴주차장에 적용됐던 '무량판 구조' 단지들의 전수조사에 나섰고, 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요.

90여개 단지 중 무려 15곳에서 보강 철근이 누락됐고, 10개 단지의 경우 설계단계부터 철근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구조계산에서 오류가 생겼거나 도면표시 단계에서부터 아예 빼버린 겁니다.

15곳의 단지들은 공공임대주택과 공공분야주택들인데요, 신혼부부가 부푼 꿈을 안고 청약을 넣어 당첨된 '행복주택' 등이라 사회 분노가 더 커지는 듯 합니다. 게다가 LH가 이들 단지 일부(남양주별내 A25)에서 보강공사가 아닌 도색공사라고 안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거짓 부실대응 논란도 있었습니다. 아니 진짜 왜 그러는 걸까요.

'철근 누락'으로 인한 부실공사라 '순살아파트'가 나오게 된 배경으로 전 LH 직원들이 유관업체에 취업한 '전관예우' 논란까지 커지면서 또 다시 내부 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와 함께 LH 측은 "시멘트 강도가 높으니 전면 재시공은 하지 않고 보강 공사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멘트 강도' 언급에 시민들은 "뼈는 없지만 살이 튼튼하다는거냐"는 비판과 함께 "원재료를 아예 넣지 않거나 빼먹었는데 공사비는 왜 올랐던거냐"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저녁 당정이 긴급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LH의 철근 누락 아파트 부실 시공 사태와 관련해 입주자에게는 손해배상을, 입주 예정자들에겐 재당첨 제한이 없는 계약 해지권을 부여하겠다고 급하게 발표하긴 했습니다.

다음날인 3일에는 국토부가 민간아파트 293개 단지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숲트리마제(2017년 준공)와 반포써밋(2018년),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2019년) 등 서울 29개 단지 중 1군 건설사 단지들이 다수 포함된터라 입주민들은 "설마 우리 단지도?"라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앗 서울 강남구 개포동 A아파트, 강동구 둔촌동 B아파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C주상복합 등 현재 공사 중인 단지에도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가 채택됐다는군요.

일단 급하게라도 관련 조치가 시행되면 불씨가 가라앉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안전관련 이슈라 조사 결과에 따라 재점화 우려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건설사들도 좌불안석입니다.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에 단지 전면 재시공 결단을 내렸던 GS건설은 물론 이번 15개 단지에 이름을 올린 시공사들은 꽤 오랫동안 공들여 구축해놓은 브랜드와 신뢰에 타격을 받았습니다. 일부 건설사들은 '도면대로 지었는데 왜 시공사에만 책임을 묻냐'며 억울해하는 모습도 보이긴 합니다만, 15개 단지 중 5개 단지는 시공 단계에서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된터라 아주 결백하지만은 못할 듯 합니다. 실제 LH의 철근 누락 15개 단지 중 내년 2월 입주 예정인 한 단지(양주회천)의 지하주차장에는 보강철근 154개가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채 시공됐다는 결과가 나왔거든요.

아 관련 이슈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부실시공 관련, 시공사가 '전면재시공'이라고 발표했어도 절대 긴장의 끈을 놓으시면 안됩니다.

작년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후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그룹 대표였던 정몽규 회장이 작년 5월 "8개동 모두 철거"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지상층 일부를 남기고 재시공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있었거든요. 뒤늦게 이를 알게된 주민들이 "뒤통수 맞았다"며 반대를 거듭한 결과, 현산은 2일 저녁에서야 지상층 역시 철거하겠다고 부랴부랴 변경한 바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이 이슈의 정쟁화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국정조사'까지 언급하자 더불어민주당이 "15개 단지 중 13개 단지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준공"이라며 반박했고, 여기에 3일 오후 국토부가 'LH 무량판 15개 단지 부실 설계·시공은 현 정부 출범 전에 발생'이라는 설명자료까지 내면서 참전(?)했습니다. ......이번 사태에 국민들이 진짜 정쟁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위정자들께 진심 여쭙고 싶네요.

일단 오늘까지 나온 이슈들은 여기까지 정리하겠습니다. 이 코너에서 계속 어두운 이슈만 나온 듯 하니, 다음 시간엔 어떻게든 좀 밝은 이슈를 선정해보겠습니다. 아 제보주신다구요? 미리 감사합니다!!(...근데 과연 제보 이슈가 밝은 내용일 수 있겠는가;;;)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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