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공공택지 연체 1조 넘어… 계약금 떼이고 해약도 속출

정영희 기자 2023. 8. 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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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했던 신도시 개발사업, 지금은 독(毒)] (1) '로또'라던 택지지구 땅 포기하는 업체들

[편집자주]공공택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공공기관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을 개발해 시행사나 건설업체에 분양하는 토지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 이 같은 공공택지의 연체금이 올들어 상반기에만 1조원을 넘어섰다. 해당 토지를 분양받은 업체들은 LH에 환매·전매 등을 통한 손실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정부는 LH에 공동주택 용지를 계약금만 제외하고 다시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부채를 줄여야 하는 LH의 재무 상태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민간건설업체에 특혜 제공이란 논란에 부딪칠 수 있다. 공공택지는 무주택 서민이나 중산층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분양하는 목적으로 공급돼 시행사 입장에선 '로또'로 통했다. 금리 상승이 시작되지 않은 2~3년 전만 해도 입찰 경쟁률이 수백대 1을 넘고 일부는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20개 이상의 페이퍼컴퍼니 등 자회사 명의를 동원했다. 수년간 분양수익을 얻고 다시 공공택지를 공공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재개발 신축공사 현장./사진=김진아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LH 공공택지 연체 1조 넘어… 계약금 떼이고 해약도 속출
(2) 불황기만 되면 '배 째라'… 주택업자들 이율배반적 태도
(3) 매출 '97%' 분양수익… 공공택지 '벌떼입찰'로 떼돈 벌어들인 대방건설

중도금과 잔금을 내지 못해 어렵게 확보한 공공택지를 반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업체들이 늘고 있다. 수십에서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공공택지 쟁취에 성공했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주택토지공사(LH)에 따르면 올 6월30일 기준 택지지구 내 공공주택용지를 분양받고 납부대금을 연체한 사업장은 총 46개 필지로 연체금액은 총 1조1336억원이다. 추후 내야 할 미납금까지 포함하면 2조9028억원에 달한다. 최대 금액 연체 사업장은 경기 성남복정1 사업장으로 1413억원이 미지급됐다. 이어 ▲파주운정3(955억원) ▲고양장항(522억원) ▲인천청라(301억원) 등 수백억원씩 연체된 사업장은 40곳이 넘는다. 매입금액 전액을 미납한 사업장은 12곳에 이른다.

연체금액은 지난해 동기(1894억원) 대비 6배나 많다. 연체금액이 1조원을 넘긴 것은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1763억원이던 연체금액은 같은 해 12월 한 달만에 7492억원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로또'라 불리던 공공택지, 시장 침체엔 힘 못써


공공택지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을 비롯해 주상복합과 상가 등 각종 상업시설 등을 짓기 위해 조성되는 건설 용지다. 통상 공공기관인 LH가 조성, 공급하고 건설업체나 시행사가 입찰에 참여해 낙찰받는다. 민간개발택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어 일단 당첨되면 '로또'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건설 호황기로 불리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회 추첨에 200~300개 업체가 몰렸고 일부 기업들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수십 개의 위장 계열사를 만들어 활용하는 이른바 '벌떼입찰'에 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상황은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불황에 접어들면서 반전됐다. 분양 물량이 안 팔려 수익은 고사하고 미분양이 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시멘트와 철근값, 인건비 등이 계속 오르며 공사비 부담은 커졌다. 금융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개발로 수반되는 장기적 이윤보단 생존이 우선이란 인식이 커지며 공공택지는 어느새 애물단지가 됐다.

지난해까지 연 6.5%였던 납부대금 연체 이자는 현재 연 8.5%로 뛰었다. 이자율은 물가 상승 등의 이유로 현재 적용되는 수치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LH가 내부 검토를 거쳐 비정기적으로 재산정한다.

LH의 연체 이자율이 최소 12%에서 최대 20%에 육박하는 금융권 브릿지론 금리보다 낮다 보니 일부에선 이를 감안, 고의적으로 대금 납부를 미룬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미건설 계열사인 우미글로벌은 2019년 말 부산장안 B-1을 LH로부터 359억원에 낙찰받은 후 지난 6월까지 44억원이 미납 상태로 남아있는 등 연체를 거듭하다 최근에서야 모두 납부했다.

시공능력평가 50위권인 보광종합건설은 지난 6월 기준 성남복정1지구 B3에 대한 납부대금 1413억원을 LH에 내지 않았다. 이미 해당 용지에 지어질 500여가구 공동주택의 사전 청약까지 완료한 사실이 알려지며 고의 연체 의혹이 불거졌다.

공공택지는 납부 대금 규모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만큼 이자만 해도 상당하다. 6개월 이상 연체 되면 계약 해지를 당할 수 있다. 지난 6월 기준 계약 해지 위기에 처한 업체는 8곳이다.
경남 진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전경./사진=뉴시스


"이자 내다 문 닫을라" 계약금 버리는 업체들


불어나는 연체금을 버티지 못하고 공공택지를 반납한 기업도 등장했다. LH가 국회에 제출한 '공동주택용지 해약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인천 등에서 2곳의 공공택지가 해약됐고 올들어서도 3월에 한 건이 계약을 포기했다.

일정 기간 이상 납부대금이 밀렸다고 해서 무조건 계약이 해지되는 건 아니다. 분양받은 업체의 계약 이행 정도 여부나 해당 택지의 재매각 가능성, 향후 부동산 동향·경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관계 법령에 따라 최종 해약이 결정된다. 은행 등 채권자의 요청이 있으면 곧바로 해약 절차에 돌입하기도 한다. LH 관계자는 "해약이 되면 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업체나 시행사는 계약금 반환을 못 받아 손해를 보겠지만 LH도 재매각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계약 상황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해약 후 반납된 토지 소유권은 LH에게로 다시 넘어가고 재매각 절차를 밟는다. 계약 해지 후 바로 재매각 공고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토지 매각과 동일하게 ▲공급계획 수립·승인 ▲공급방침 결정 ▲가격사정 ▲공고 등의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요즘처럼 부동산 경기 자체가 침체에 빠지며 다수의 업체들이 재무 건전성 악화를 직면한 상황에선 재매각도 어려울 수 있다. LH에 따르면 2022년 미매각 공동주택용지는 32개 필지로 예정 금액으론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다. 올들어 정부가 각종 규제완화책을 제시함에 따라 지난해만큼 유찰률이 높진 않지만 입지와 사업성에 따라 '옥석 가리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6월22일 부천원종 B1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재매각에 나섰지만 다시 유찰됐다.

LH 측은 재매각 시에도 공공택지 분양에 실패할 경우 개별 지역과 토지 특성에 따라 입찰 기준 완화 등의 방안을 마련한다. 다만 현재까지 재매각 공고 후 유찰돼 기준 조정을 고려한 사례가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처리도 LH 입장에선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 업계에선 올해만 택지지구 미납대금이 1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지금처럼 각 업체가 '곳간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상태라면 공공택지 반환이나 유찰은 예견된 수순이란 의견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이나 투자금 회수가 일정 부분 담보되거나 매몰비용이 지나치게 커 현시점에서 멈추기 곤란한 사업은 어떻게든 진행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사업성이 불투명한 지역에선 차라리 계약금을 버리고 사업을 포기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는 맞다"고 말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체나 시행사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물량도 소화를 못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택지를 매입해서 분양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규택지에 신축 아파트를 짓고 분양하기까지 최소 5년은 필요하다"며 "현재와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볼 때 수급이나 가격 면에서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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