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주석을 벤치에 묶다니…9년차 대기만성 유격수의 반란, 반짝이 아니다

김민경 기자 2023. 8. 4.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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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이도윤. ⓒ한화 이글스

[스포티비뉴스=대전, 김민경 기자] "솔직히 내가 주전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먼저 나가는 선수가 주전이라는 생각으로 팀에 도움이 되려 하죠."

대답은 겸손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실력은 그렇지 않다. 원조 주전 유격수 하주석(29)을 더그아웃에 묶었고, 베테랑 유격수 오선진(34)도 들어갈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 프로 입단 9년차 유격수 이도윤(27)이 한화 유격수 경쟁 구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지금으로선 반짝하고 말 활약이 아닌 듯하다.

사실 이도윤은 지난 8년 동안 빛을 전혀 보지 못한 선수였다. 2015년 2차 3라운드 24순위로 꽤 상위로 지명됐는데도, 커리어 대부분을 2군에서 생활했다. 2021년부터 조금씩 1군에서 기회를 얻긴 했으나 내야 어딘가 구멍이 났을 때 채우는 정도의 임무를 맡았다. 2021년 56경기 68타석, 2022년 80경기 126타석에 나서며 조금씩 1군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과정에 있었다.

그러다 올해 이도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주전 유격수 하주석이 지난해 11월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KBO로부터 7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한화는 주전 유격수의 이탈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팀의 핵심 전력이었기 때문. 하주석 없이 올 시즌 절반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FA 시장에서 오선진을 1+1년 총액 4억원에 데려오면서 급한 불을 껐다.

이도윤이 처음부터 기회를 잡은 건 아니었다. 오선진이 먼저 하주석의 빈자리를 대신하면서 이도윤은 개막하고 40일 넘게 2군에서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오선진이 햄스트링과 턱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발생하면서 이도윤이 1군에서 뛸 기회가 찾아왔다. 이도윤은 지난 5월 말부터 차근차근 1군에서 출전 기회를 늘려 나갔고, 벌써 77일째 붙박이로 버티고 있다.

사실상 첫 풀타임 시즌인데도 이도윤은 지치지 않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7월 이후 날씨가 무더워질수록 더 거침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후반기 11경기 성적은 타율 0.381(21타수 8안타)에 이른다. 음주운전 징계를 마치고 돌아온 하주석은 후반기 10경기 타율 0.125(16타수 2안타), 부상에서 회복한 오선진은 후반기 6경기에서 타율 0.250(12타수 3안타)을 기록하고 있다. 감독은 당연히 이도윤에게 계속 자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 하주석 이도윤 ⓒ곽혜미 기자

이도윤은 2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도 팀의 4연패를 끊는 결정적 한 방을 날렸다. 3-1로 쫓기고 맞이한 7회말 이진영의 안타와 정은원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 2루 기회에서 이도윤이 우익선상으로 빠지는 2타점 적시 3루타를 날려 단숨에 5-1로 거리를 벌렸다. 두산이 8회초 한 점을 더 따라붙은 것을 고려하면 이도윤이 뽑은 추가점은 더더욱 값졌다. 프로 9년차에 생애 첫 3루타를 기록한 이도윤은 4타수 2안타 2타점 만점 활약을 펼쳤다.

최원호 감독은 경기 뒤 "7회 추가 득점이 필요한 타이밍에 2타점 3루타를 기록하는 등 멀티히트를 기록한 이도윤을 칭찬하고 싶다"고 따로 언급했다.

이도윤은 "평소보다 승리에 더 많이 기여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2번타자는 처음이었는데,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부담은 없었고, 타석이 빨리 돌아오겠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만개하다 보니 좋은 날일수록 더 가족 생각이 난다. 지난달 3일 태어난 복덩이 아들은 아빠 이도윤이 야구선수로 더 힘을 내야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도윤은 "힘들 때 가족 생각을 하면서 더 열심히 뛰게 된다. 아내가 집에서 혼자 육아하느라 힘들 텐데도 나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항상 고맙다"고 마음을 표현했다.

이대로면 하주석은 더더욱 이도윤을 밀어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징계로 시즌 준비를 팀과 함께 제대로 하지 못했고, 현재 출전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뚝 떨어진 타격감을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다.

이도윤은 그래도 지금에 만족하거나 안심하지 않는다. 그는 "솔직히 내가 주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나가는 선수가 주전이라는 생각으로 팀에 도움이 되려 하고, 선발로 나가지 않아도 뒤에 나가서 최선을 다하려 준비한다"며 매일 주어진 기회에 모든 걸 쏟겠다고 다짐했다.

▲ 이도윤 ⓒ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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