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이하는 실질 최저임금 낮아진 시대, 민주당은 왜 침묵하나
[황두영 작가(fangdeh@gmail.com)]
2024년도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잠정 결정되었다. 올해에 비해 고작 2.5% 오른 것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최종적으로 3.5%로 전망하고 있으니,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올해보다 줄어든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2020년에 2021년도 최저임금을 1.5% 올리는 것으로 결정한 데 이어 역대 두 번째 낮은 상승률이다. 하지만 2020년은 코로나19 초기로 어쨌든 일자리 개수를 유지하는 게 가장 시급했던 비상상황이었다. 또 소비자 물가상승률도 2019년 0.4%, 2020년 0.5%에 불과했기 때문에 어쨌든 병아리 눈꼽만큼은 노동자들이 더 받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올해 사실상 역대 최저의 최저임금 상승률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실질 최저임금이 줄어드는 첫해이기도 하다.
게다가 내년부터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더 넓어지면서 노동자들이 받는 급여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기본급이 아닌 각종 수당, 상여금 등을 최저임금으로 쳐주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같은 시급이라도 기본급이 낮고 수당이 높으면, 야근‧주말 수당 등이 낮아지는 효과가 생겨 노동자들의 급여가 줄어들게 된다. 이걸 만회하려면 다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축소하거나, 최저임금 상승률이 크게 올리거나 해야 했는데 둘 다 실패한 채 2024년으로 다가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계획한 최저임금 상승 폭이 유지되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하회하는 상황에서도, 사용자 측을 위한 당근만이 남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계속 빠르게 올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는 간데없고, 권력과 그 의지가 길이길이 계속되리란 믿음 하에 만든 제도만 의구하다. 문재인 정권에서 만든 제도가 윤석열 정권 하에서 최저임금제가 제 역할을 못 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 윤석열, '약자와 동행'한다더니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급 받고 일할 수 있게 해야")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박한 상승 폭보다 날 더 답답하게 한 건 민주당의 침묵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 내내 관련한 논평, 브리핑, 지도부 발언 등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 홈페이지를 모조리 검색해도 아예 최저임금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민주당 홈페이지에 매일 십 수개의 논평이 올라오는 걸 생각하면, 잘 결정되길 바란다는 덕담 격 논평 한번 언급이 없는 건 진짜 이상한 일이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는 차등적용 등 중요한 논쟁들이 있었는데도 민주당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7월 19일 결정 후, 7월 20일에 박광온 원내대표가 결정 과정의 아쉬움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짧게 언급했을 뿐이다.
통계청의 최저임금 영향률 통계에 따르면, 최저임금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올해 109만여 명이다. 이 숫자는 노동 시장 상황과 최저임금 결정액에 따라 매년 달라지는데 2018년도의 경우 290만 명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이 다수 노동자의 급여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의 간접적 영향을 받는 노동자, 또 그들의 부양자까지 하면 수천만의 국민들이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들은 민주당이 대변한다고 주장해온 서민과 중산층이다.
그렇기에 최저임금 결정은 사회적 갈등의 가장 중대한 격전지 중 하나다.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영향도 아니고, 당장 몇 달 후부터 노동자의 통장에 직접적으로 찍히는 액수를 결정하는 전장이다. 어쩌면 최저임금은 법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일 뿐, 국회와 정당의 역할이 아니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직접적인 분배 문제에 개입할 수 없는 정치란 어떤 쓸모가 있는가.
여야 정치인들이 공히 요새 가장 많이 쓰는 어휘는 '민생'일 것이다. 이재명 당대표도 셀 수 없이 여러 차례 '민생'을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작년 7월 당대표 출마선언문에서 "정치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국민, 오로지 민생"이라고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정책이 민생이 짓누르는 채찍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민생을 강조하기는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여름 휴가에도 소비 진작을 위한 민생 탐방을 포함한다고 한다.
모두가 각자만 민생을 챙기는 적임자이고, 또 상대는 민생을 파탄 낸다고 한다. 이쯤 되면 민생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가득하고, 대체 민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이름만 남아 있는 텅텅 빈 공집합을 각자 자신들의 부분집합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민생을 해결하겠다는 선언이 든든하지 않고 허망하기만 하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목적어도 서술어도 없이 열심히, 진심으로, 혼신으로, 진짜, 국민을 위해, 윤 정부의 파탄에 맞서 등의 부사로만 가득한 이 정치가 찜통더위만큼 짜증이 난다.
물론 최저임금에 대한 민주당의 트라우마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급격한 최저임금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왜 정치적으로 실패했는지는 이번 글에서 자세히 다루긴 어렵다. 간단히만 내 의견을 밝히면, 전체 노동시장의 노동소득 분배를 개선할 로드맵이 불투명했다. 대신 당장 정부가 손쉽게 바꿀 수 있는 정책수단인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고용형태 개선에 너무 지나치게 낙관하고 집착했다. 그러면서 정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만 시장변화에 비해 너무 빨리 변화하면서 시장의 왜곡을 가져왔고 불공정 논란을 자처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개선할 시간을 갖지 못했고, 노동소득 따위 통째로 우습게 만든 자산시장 폭등은 정부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악재였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가 너무 급격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바람에 '을'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면 최저임금을 어떻게 하겠다는 공약은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최저임금이 적어도 물가보다는 더 올라야 한다고 말하기에도, 당분간은 낮은 인상폭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민주당의 곤란은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곤란하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인가? 정당이 그래도 될까?
최저임금에 대한 민주당의 침묵은 전임 정부의 사회경제적 정책에 대한 평가가 당내에서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민주당은 당내에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지 않고, 당의 지난 과오 평가를 기피한다. 이전 정책을 계승, 개선, 폐기 등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민주당은 아무 결과도 도출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 옳았고, 세상 잘못된 건 다 윤석열 정부 탓이다. 최저임금이나 부동산 정책처럼 차마 우리가 잘했다고만 말할 수 없는 부분은 그저 침묵하고 뭉개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정치는 민주당이 쉬이 다룰 수 있고 정부‧여당을 쉽게 비판할 수 있는 사안으로만 축소된다. 다른 말로는 민주당이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것이다. 민주당이 유권자 다수의 사회경제적 필요를 반영해 사회경제적 구상을 제시할 여지는 극도로 축소된다.
2022년 6월, 이인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연재했다. 많은 기대를 받고 시작한 민주당 정부가 정권 연장을 하지 못했고, 뒤이은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한 후다. 이 글은 '민생'에 대한 민주당의 무의식적인 전제를 잘 드러낸다.
"저는 우리의 정세 판단보다 대중을 믿습니다. 대중은 전술적 시점보다 더 강력하게 전략적 시점에 행동합니다. (중략)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이런 정세에서는 서민 중산층의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신뢰를 쌓고 정치이슈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중략) 당분간 정치투쟁 일변도의 민주당 모습을 탈각해야 합니다. 검수완박도, 언론개혁도, 재벌개혁도 민생정치의 기반 위에서 전략적으로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에서 시작된 정치이슈가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면적 정치투쟁은 유연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22.6.12. 이인영 의원 페이스북)
여기서 '민생 정치'는 '정치 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도구다. 대중은 먹고 사는 문제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민주당이 이 문제를 잘 다룬다면 자연히 정치 투쟁에도 따라 올 것이라고 가정한다. 정치권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있었지만, '정치와 분리된 민생'은 여전히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는지는 현대 정치의 가장 크고 어려운 부분이다. 국민을 대충 뭉뚱그린 한 덩어리로 보지 않는 한, 국민 다수에게 대충 다 좋은 '민생 정치'란 성립할 수 없다. 정치 말고 민생, 이란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면 진작 좀 하지'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여기서 '민생'은 아주 단순한 문제로 치부된다. '민생 과제'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이다. 마치 우리가 파야 할 지점이 정해져 있고, 우리가 충분히 삽질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땅속의 진주를 발견치 못했다고 말이다. 이는 유권자 구성을 '소수의 특권층' 대 '대다수의 서민대중'으로만 단순히 보기 때문이다. 서민대중이라는 단일한 집단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민생 정치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물론 세계가 궁극적으로 1%가 99%를 착취한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이 믿음이 매순간 정책 결정이 반영해야 할 사회경제적 복잡성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사회경제적 구상은 유권자들에게 제시된 적이 없다. 혹시나 어떤 변고로 내년쯤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의 누군가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어떤 사회경제적 정책을 쓸지 조금이라도 예상할 수 있을까? 외부의 전문가들과 관료들이 제시한 계획들, 당대의 자극적인 사건사고들에 대응하는 설익은 정책들이 섞여 불협화음으로 쏟아진다. 선거를 통해서 제대로 설명되고 동의를 받지 못한 정책들은 정치적 반발을 가져올 게 벌써 두렵다.
7월에는 민주당에서 정치신인들의 출마 선언이 유독 줄을 이었다. 지역구 경선을 준비하려면 7월에는 권리당원 모집을 마무리해야 하는 당규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연이 깊은 분들도 많고, 또 진심으로 응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는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출마선언문에서 하나같이 새로운 정치를 호소했다. 그렇지만, 무엇을? 우리는 어디를 향해 어떻게 새 여정을 시작하는가? 목적과 방법이 없는 새로움은 그저 불안과 혼란일 뿐이다. 바뀌어야 한다는 후보들의 절박함에는 백번 공감했지만, 그들의 출마선언문은 챗(chat)GPT에게 '민주당 후보 출마선언문을 써달라'고 시킨 것 마냥 익숙한 경구의 반복일 뿐 알맹이가 없었다.
물론 이제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신인 개인들에게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는 건 과도한 주문이다. 사실 나도 고민은 많이 하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인 개인이 할 수 없기에 정당이라는 조직이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쟁점에 대한 뭉개기를 총선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 나는 민주당이 최소한 최저임금 인상 여부, 플랫폼 노동자 보호, 이민 확대, 국민연금 개선에 대해 분명하고 완성도 있는 대안을 가지고 총선을 치르길 바란다. 이게 정당에 대한 과도한 요구인가?
실질 최저임금이 낮아지는 시대를 우리는 처음 맞이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가파른 변곡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의 쓸모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간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 모든 혼란과 고통 뒤에는 어쨌든 더 부유하고 번영한 국가가 있을 것이란 공유된 희망에 기대어 왔다. 정치세력마다 방법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결국 가장 가난한 이들을 포함한 모두가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리란 기대가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IMF나 팬데믹 같은 핑계도 없는데 그냥 급여가 줄어든다. 더 이상 부풀지 않는 사회, 이 제로섬(zero-sum)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한 방식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민주당뿐 아니라 우리 정치 전체가 특히나 못 해 온 그 정치적 역할 말이다.
[황두영 작가(fangde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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