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애’ 논란 휩싸이면, ‘탈덕’해야 할까요? [책&생각]

최원형 2023. 8.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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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주도하는 케이팝은 성공한 문화산업으로 추켜세워지는 한편 성적 대상화, 열악한 노동조건, 감정 착취 등 그 '어두운 이면'도 지적당한다.

팬들은 '덕질'로 행복을 얻고자 하지만, 끊임없이 생산되는 '논란'은 그 가능성을 의문에 부친다.

사회학적 자원들과 아이돌 산업에 대한 기존 연구 등을 참고한 지은이는 기존의 뻔한 '팬덤' 분석들과는 다른, '감정에 기반한 공론장'의 본질과 그 속에 붙들린 주체들의 정치적 가능성을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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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이 연 온라인 콘서트에 팬들이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장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망설이는 사랑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
안희제 지음 l 오월의봄 l 1만9000원

아이돌이 주도하는 케이팝은 성공한 문화산업으로 추켜세워지는 한편 성적 대상화, 열악한 노동조건, 감정 착취 등 그 ‘어두운 이면’도 지적당한다. 팬들은 ‘덕질’로 행복을 얻고자 하지만, 끊임없이 생산되는 ‘논란’은 그 가능성을 의문에 부친다.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학교폭력이나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나는 그를 변호할 것인가 아니면 ‘탈덕’(덕질을 그만두는 것)하거나 ‘퇴출’을 요구할 것인가. 성상품화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는 그에 기반한 산업 속에서 일하는 아이돌을 좋아해선 안 되는가. ‘인성 논란’ 등으로 비난받는 아이돌은 ‘사랑받을 자격’을 박탈당해야 하는가.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작가 안희제가 쓴 ‘망설이는 사랑’은 아이돌 산업과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론장을 새로운 눈으로 풀이하는 책이다. 사회학적 자원들과 아이돌 산업에 대한 기존 연구 등을 참고한 지은이는 기존의 뻔한 ‘팬덤’ 분석들과는 다른, ‘감정에 기반한 공론장’의 본질과 그 속에 붙들린 주체들의 정치적 가능성을 탐사한다.

지은이는 브뤼노 라투르의 논의를 따라 ‘돌판’(아이돌 산업 또는 팬덤 전체)을 어떤 네트워크로 파악한다. 기획사, 아티스트, 팬, 대중, 언론, 소셜미디어 플랫폼 등 다양한 행위자들은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거기에 흐르고 있는 것은 감정이다. 사랑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아이돌 산업은 ‘집단적 도덕주의’와 ‘사랑의 자격론’을 배태하고 있다.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노래나 춤과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보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일’로 이해되며, 따라서 아이돌 아티스트의 논란은 그가 대중 앞에 나와 사랑받을 자격, 즉 사랑의 자격론으로 이어진다.”

‘4세대’로 꼽히는 아이돌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뉴진스의 ‘오엠지’ 뮤직비디오는 아티스트와 팬덤 사이의 관계를 다뤄 관심을 끌었다. 뮤직비디오 영상 갈무리

성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 갑질이든, 아이돌을 따라다니는 ‘논란’은 “행복할 자격, 그리고 사랑의 자격을 두고 벌어지는 일종의 도덕 논쟁”이다. ‘관심경제’의 특성상 ‘사이버렉카’-알고리즘-온라인플랫폼-대중-언론-팬덤 등이 참여하는 네트워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논란은 기본적으로 구조가 아니라 개인으로 향하며, 개인의 퇴출을 요구하는 ‘캔슬 컬처’로 구체화된다. “행복할 자격을 갖춘 도덕적 존재”를 자임하는 대중이 아티스트 개인의 ‘사랑받을 자격’을 처형대에 올려 결국 관심경제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정해둔 채 내달리는 이 작동은 정의 실현의 노력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숱한 논란 속에서 “우리가 놓인 장의 속도에 어떻게든 제동을 걸고 싶은” 팬들의 모습이다. 빠르게 흘러가기만 하는 논란은 팬들에게 당장 입장을 정하라 닦달한다. 그러나 사랑을 놓기 힘든 팬들은 옳고 그름의 기준을 더 따져묻고 아티스트 당사자와 자신뿐 아니라 연관된 여러 타자들(이를테면 피해자)의 입장까지 고려하며 “망설인다.” 죄책감(길티)과 즐거움(플레저)은 선택할 수 없이 하나로 묶여 있다. 이때 아이돌은 단지 ‘윤리적이지 않으면 퇴출당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윤리적 고민을 촉발하는 존재가 된다. 지은이는 이 ‘망설임’을 우리가 놓인 공론장 전체를 톺아보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아티스트를 마음에 안 들면 치워버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복잡하고 고유한 인간으로 대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이를 위해 윤리적 고민들을 놓지 않는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일까?”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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