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한가하지만, 좋은 일이 끊이지 않는 책방 [책&생각]

한겨레 2023. 8.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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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이름인 '시홍서가'의 '時紅'에는 '시간이 무르익다' 또는 '시간이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았다.

책방은 나에게 '일'이 아니라 '춤'이다.

지난해 '세계 책의 날'에는 수제본가인 두 엄마(오주현·조수미님)와 세 자녀의 일상과 성장을 담은 기록들을 손수 엮어 만든 수제본 전시 '책의 처음' 전시를 선보였고, 올해는 책방 여행자 김승태 작가의 '독립서점 드로잉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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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우리 책방은요│시홍서가
원주 책방 ‘시홍서가’에서 북토크가 열리고 있는 모습.
원주 책방 ‘시홍서가’ 외부 모습.

책방 이름인 ‘시홍서가’의 ‘時紅’에는 ‘시간이 무르익다’ 또는 ‘시간이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았다. 성장도 성숙도 늙음도 그렇게 시간의 물결에 맡겨 저절로 되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책방은 나에게 ‘일’이 아니라 ‘춤’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저 혼자만의 자족의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점이 또한 감사하다.

지난해 ‘세계 책의 날’에는 수제본가인 두 엄마(오주현·조수미님)와 세 자녀의 일상과 성장을 담은 기록들을 손수 엮어 만든 수제본 전시 ‘책의 처음’ 전시를 선보였고, 올해는 책방 여행자 김승태 작가의 ‘독립서점 드로잉전’을 열었다. 이 두 전시 모두 서울 방산시장에 있는 책방 ‘그래서’와의 우정으로 유치하게 된 것이다. 책방 한편에는 오래된 피아노가 있다. 이 피아노로 작년에는 시립도서관에서 지원하는 동네책방 북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기도 했다. 동네의 숨은 음악가가 쇼팽과 리스트의 곡을 연주하고, 독자들은 소설의 구절을 낭송했다.

1인 책방 운영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작년 연말엔 ‘모임 디자이너’라고 명명한 독서모임의 리더와 유·무료 클래스를 운영하실 분들의 신청을 받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 ‘고전강독’, ‘경제적 자유를 찾아서’ 세 가지 주제의 독서 모임을 꾸렸고, ‘어린 왕자 영어 원서 읽기’, ‘리소그라피로 책갈피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했다.

시홍서가는 인문학 전반의 책들을 큐레이션 한다. 인문학 전반이라고 해도 책방의 규모, 확보 가능한 예산, 책방지기의 지식과 안목에 따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저 ‘보통 사람을 위한 인문교양’이라는 나름의 기준으로 책을 준비한다. 조용하고 한가한 책방이지만, 좋은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할 일을 하고 있고, 올 사람이 오고 있고, 만날 사람들이 만난다. 책방을 연 지 2년 남짓 동안 책방 초대손님으로는 최영미 시인, 고진하 시인, 민승기 철학자, 박종무 동물연대 대표, 이현준 소설가, 윤혜숙 청소년소설 작가, 남재윤 심리상담사, 장시우 시인, 양선희 시인, 박석태 미술평론가, 하정산 그림책 작가, 장강명 작가, 변은혜 작가, 이하림 작가 이런 분들이 오셔서 독자들과 만났다. 출판사 온다프레스와 정소영 번역가와 함께했던 북토크를 인연으로 근래에 원주에 정착하신 작가님께서 전공하신 미국 소설을 함께 읽는 북클럽을 제안해 주셨다. 일정이 나왔고, 참여자를 모집 중이다. 벅차고 기대된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전기가 없는 동네보다 어둡다.” 한 책방 방명록에 남긴 류시화 시인의 메모다. 이 책방 시홍서가가 있어, 내가 사는 우리 동네가 ‘가고 싶은 동네’ ‘아름다운 동네’ ‘환한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방을 지킨다.

원주/글·사진 김영미 시홍서가 대표

시홍서가
강원도 원주시 이화1길 41-12(단계동)
instagram.com/sihong_books
원주 책방 ‘시홍서가’ 내부 모습.
원주 책방 ‘시홍서가’ 내부 모습.
원주 책방 ‘시홍서가’에서 북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모습.
원주 책방 ‘시홍서가’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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