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이청준은 욕망했고 부끄러워했고 과묵했고 짓궂었다

임인택 2023. 8.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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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장 ‘이청준 평전’
소설가 이청준이 2003년 8월 고향인 장흥을 기행하는 중 자신의 단행본에 서명하고 있다. 5년 뒤 그는 고향에 묻힌다. 사진 한순미 조선대 교수, 문학과지성사 제공

이청준 평전

이윤옥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2만2000원

이달 나온 ‘이청준 평전’은 알던 것과 알지 못했던 것 사이로 팽팽히 되살아난 이청준을 내보이는 듯하다. 불우하고 불온하기 이를 데 없던 한국 근현대를 시공간 삼아 “서구 소설 장르의 한국적 갱신”을 이룬 작가라는 세평이 알 만한 것이다. 그가 타계(1939~2008)한 지 지난달 말로 15주년이다.

여러 자전적 소설과 작가적 신념으로 보편의 구원을 꾀해온 이청준의 ‘평전론’을 먼저 새길 법하다.

“평전은 쓰는 사람과 대상이 겨루는 상상력 싸움이다. 대상이 소설가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소설가는 작품으로 교묘히 자기합리화를 시도했을 테니까. 어떤 경우라도 쓰는 사람의 상상력이 대상의 상상력에 지면 안 된다. 그러면 그 평전은 실패하고 만다.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내 맨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

아무렴 “상상력”의 자리엔 ‘팩트’가 들어서야 하지 않을까. 오류일 리 없다. 팩트를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이청준은 ‘사실적 평전’이 아닌 ‘진실적 평전’을 바랐던 것 같다. 평전을 쓸 작가가 유언처럼 지목되고, 그 작가가 유지를 받들듯 10년 이상을 붙들어 완성시켰다는 점이 이 평전의 가장 올돌한 특징이다. 생애 연보로도 기록될 수 없는, 하지만 작가에게 깊이 틈입해 있는 형상과 정신의 원형들을 때로 파헤치고, 이청준의 어떤 발언조차 단호히 ‘거짓’이라 들춰 내막을 짚는다.

‘추리’가 더해져 가능한 일이고,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청준의 일기, 편지, 초고와 출간본 사이 인물 추적, 때로 엇갈리는 증언들을 ‘추적’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2017년 진행 중의 평전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이청준을 가장 잘 아는 작가’로 소개된 평론가이자 작가 이윤옥(65)이 그때로부터도 6년을 더 들인 까닭이리라.

평전에서 사뭇 흥미로운 접근은, 알지 못했던 ‘이청준의 여성들’에 대한 탐문이다.

1939년 전남 장흥 궁벽한 어촌에서 이남석(1896년생)과 김금례(1900년생)의 5남3녀 중 4남으로 이청준은 태어난다. 세살 늦게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21살에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한다. 열살도 안 되던 1944년 막내 남동생에 이어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던 큰형을 1945년, 아버지를 1946년 떠나보낸다. “남자가 먼저 죽는 가문”의 ‘독자’(둘째형도 이후 자살한다)에게 지워진 가난은 지울 수 없는 ‘냄새’가 된다. 수치이자 때론 향수였으리라.

1949년 국민학교 담임교사로 이청준을 아꼈던 도시 여성 전정자는 이상적 여성의 시초다. 등단작인 ‘퇴원’의 미스 윤에서부터 미완성 유작 ‘신화의 시대’의 지윤옥으로까지 소멸되지 않는다. 그 닿을 수 없는 이상의 현현이 이청준이 고등학생 때 가정교사로 입주해 만난 호남 제일 갑부의 딸 현영민이다. 원가족이 작가에게 “부끄러움”의 원천이었다면, 현씨집은 제2의 가족으로 ‘욕망’의 원천이다.

수치도 욕망도 ‘허기’의 다른 말일 터, 여러 작품에선 끼니를 거를 때 연을 날렸다던 소년 이청준이 형상화되어 있다. 수필의 제목마따나 ‘허기의 연’은 이윤옥에게 고통과 동경의 양가적 알레고리로 접수된다.

남편 현준호와 사별 뒤 가정을 이끌던 교양인 신종림을 어머니로 부르고, “청준의 말에는 향기가 있다”던 신종림 역시 ‘모(母)’로 자칭해 편지할 만큼 이청준과의 관계는 돈독했다. 하지만 이청준이 신종림에 의해 ‘동생의 누나’로 규정된 현영민에게 연심을 품고, 마침내 제대 복학한 1964년 여름 고백하면서 두 관계는 파탄 난다. 대학 3년 스물다섯의 이청준에게 신종림은 매를 들었다.

“토속적 정한의 세계”를 풀어냈다는 ‘서편제’의 작가가 클래식에 심취했다는 사실도 감춰져 왔다. 일기장 ‘서록’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으로 시작되는 168곡의 자필 목록 등이 정연하다. 이 또한 서양고전음악을 좋아했던 현영민과 닿는다. 제2가족에 대한 허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공원인 줄 알고 들어가 구경했다던 현씨네 대저택에 입주하기 전 이청준은 클래식을 경험한 적이 없다. 1964년 사태 후 언젠가 그 클래식도 떠나보낸다. “이후 이청준은 우리가 알듯이 판소리 등 전통음악에 경도되”었다는 이윤옥의 서술대로라면, ‘서편제’의 운명도 그렇게 정해진 모양이다.

이청준은 이미 시골 출신 호남의 “신화”였다. 광주일고 최초의 직접선거로 뽑힌 학생회장(1959)이기도 했는데, 당시 지방 수재들의 뻔한 진로가 아닌 ‘문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 한 배경에 이윤옥은 현영민을 붙든다. 부와 권력으론 이미 현씨네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적 지배욕’의 발로다.

“이청준의 고등학교 시절은 도시로 대변되는 세계에 대한 복수심…. 그의 복수심은 현영민을 포함한 도시와 부, 그것을 갖고 싶다는 지배욕으로 나타난다. 이청준의 위대함은 그 지배욕을 결국 문학으로 완성했다는 데 있다.”

이청준의 허기가 작가정신을 벼림은 물론이다. “…애초에 글을 생각하게 된 동기는 그처럼 순교자적인 것이었다기보다도, 오히려 그의 바깥 세계에 대한 강렬한 복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인의 욕망과 복수심을… 깡그리 은폐해버린 채 오로지 사회적인 책임만을 그럴듯하게 말하고 싶어 한다면, 거기에는 필경 엉뚱한 속임수와 배반이 깃들일 위험이 있습니다.”(‘지배와 해방’ 속 소설가 이정훈)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 소식을 가정교사로 입주한 남경자의 집에서 듣는다. 남경자는 그리고 이청준의 삶, 문학적 반려자가 된다. 1968년 동인문학상(사상계 마지막 주관)을 받은 ‘병신과 머저리’, 첫 단편집 ‘별을 보여드립니다’(1971), 장편 ‘당신들의 천국’(1976),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 중단편 ‘눈길’(1977), ‘서편제’(1978), ‘꽃 지고 강물 흘러’(2004) 등 일평생 17편의 장편과 155편의 중단편을 이청준은 남겼다. 장편 두 권은 100쇄를 돌파했고, ‘벌레 이야기’(1985)는 영화 ‘밀양’(2007), ‘조만득 씨’(1982)는 ‘나는 행복합니다’(2009)로 사전 사후 이청준을 대중 앞에 불렀다.

근현대를 관통한 반세기 작가 가운데 그만한 작품성과 대중성을 확보한 이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청준 평전’이 수치와 허기란 두 낱말로 관통된다는 점은 기이할 수 있으나, 종국 그보다 더 문학적인 필연은 없어 보인다.

이청준은 “법대 수업을 청강하려고 독문과에 진학했다”거나, “7번 정도 신춘문예 낙방 뒤 등단했다”고 말하곤 했다. 거짓이다. 등단 공식 소감에도 어머니에 대한 거짓을 숨겨뒀다. 이윤옥은 ‘자신과의 거리두기’ 등으로 배경을 해석한다. 프랑스 평론가 클로드 무샤르가 2000년대 이청준을 만나 “과묵하지만 짓궂고 조금은 아이러니컬한” 이로 기억하게 된 풍경들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윤옥의 상상력이 끝내 이청준의 상상력을 넘어서지 못한 대목도 있다. 이청준은 2004년 예술원 회원 심사에서 탈락한 뒤 “비인간적 OOO들의 자리인 줄 알았다면 진작에 사양했어야” 했다고 경멸(그해 6월14일 일기)하면서도 2005년 예술원에 입성한다. 별도로 그를 ‘일종의 배신자’로 기억하는 지인도 있다.

그럼에도 이청준이 이청준 안에 더 많은 이청준의 허기를 삼켜 그 많은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할 수 있었다는 진실은 그저 유유하다. “그는 늘 해변 밭 언덕 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 바다로 간 그의 노래는 반짝이는 물비늘이 되고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갔다”는 묘비명대로 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2017년 한겨레와 인터뷰 당시의 이윤옥 평론가.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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