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외벽 높고 쓸쓸한 출입문…그것이 바로 ‘토머슨’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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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에 계단이 붙어 있다.
그런데 계단의 정점에 있어야 할 출입문이 없다.
반대로 건물 외벽 높은 곳에 출입문이 나 있다.
때론 문 위에 있던 차양이나 문의 일부였던 손잡이가 콘크리트로 발라진 건물 외벽에 외롭게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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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 토머슨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l 안그라픽스 l 2만2000원
건물 외벽에 계단이 붙어 있다. 그런데 계단의 정점에 있어야 할 출입문이 없다. 그냥 벽이다. 반대로 건물 외벽 높은 곳에 출입문이 나 있다. 아래에는 난간이나 계단 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 날 줄 아는 사람만 그 문을 이용할 참이다. 때론 문 위에 있던 차양이나 문의 일부였던 손잡이가 콘크리트로 발라진 건물 외벽에 외롭게 붙어 있다. 건물이나 건축 환경의 일부였던 것들이 개축 등을 거치며 사라지지 않고 덩그러니 남아 만들어낸 장면들이다.
일본의 현대미술가 아카세가와 겐페이(1937~2014)는 이런 것들에 ‘토머슨’이란 이름을 붙이고, 여기에서 ‘초예술’이란 개념을 끌어냈다. 우리가 사는 ‘당연한 세계’는 쓰임 있는 존재만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한다. 그런데 그게 “‘부동산적 물건’이라면 손쉽게 폐기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세계의 한쪽 구석에 남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을 넘어서는 예술, ‘초예술’이 아니겠냐는 제안이다. 토머슨과 초예술은 1982년 잡지 기고로 알려졌고, ‘토머스니언’을 자처하는 독자들이 도시 곳곳의 토머슨들을 찾아내 ‘보고’하는 등 널리 관심을 끌었다. 토머슨이란 이름은, 높은 연봉을 받지만 헛방망이질만 하며 벤치를 지켰던 메이저리그 출신 야구선수 게리 토머슨으로부터 따왔다.
짐짓 장난스럽게 과장되어 있지만, ‘노상관찰학’으로 발전한 토머슨은 심오한 문명 비판을 담고 있다. 초예술은 “문명 안에 먼저 빈핍성, 즉 궁상맞은 성질이 생겨나 있지 않으면 파생되기 어렵다.” 그리고 ‘궁상맞은 성질’은 세상 모든 것을 ‘쓸모 있는 것 아니면 쓰레기’로 구분해버리는 인간 문명의 한계와 허술함에서 온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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