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반대와 ‘며느리 역할’ 사이의 상관관계? [책&생각]
한국의 차별적인 가족 시스템 분석
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l 창비 l 1만7000원
지난 2007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허용하는 법안’이라며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의 시위 구호는 “며느리가 남자라니!”였다. 2010년 김수현 작가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게이 커플을 등장시키자, 한 일간지 1면에는 이 드라마를 규탄하는 광고가 실렸다. 광고의 제목은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였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동성혼을 반대하는 이유들은 다양했다. 생물학적 암수의 결합만이 자연의 섭리라든가, 동성혼을 허용하면 동성애가 만연하게 될 거라든지, 종교적 교리에 맞지 않는다든가…. 많고 많은 반대 이유 중에서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가 채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왜 이것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호소력 있는 문구로 여겨졌을까?
‘가족각본’은 이 의문점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저자는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다. 저자의 전작인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결정장애’라는 표현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를 공기처럼 감싸고 있는 차별들을 폭로했듯이, 이 책은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문구에서 출발해 보이지 않게 작동하고 있는 차별적인 가족 시스템을 까발린다.
결론은 한국의 가족은 정교하게 짜놓은 성별 분업에 따른 역할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남자가 며느리 역할을 맡는 것에 기겁을 한다는 것이다. 즉, 이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는 며느리 역할은 반드시 ‘여자’가 맡도록 정해져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라는 것이다.
그럼 ‘며느리 역할’이란 무엇일까? 한자로 ‘며느리 부(婦)’는 손에 빗자루를 들고 집 안을 청소하는 여자를 형상화한 글자다. 그야말로 집안일이 며느리의 핵심 의무다. 살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배우자를 내조하고 시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존재다. 이런 돌봄노동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편견이 있기 때문에, 며느리가 남자인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며느리가 하는 일이나 사위가 하는 일이나 별로 다를 게 없거나, 며느리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의무가 없는 사회였다면 이 구호는 결코 채택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며느리’가 이토록 핵심적인 반대 근거로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 내 역할과 기능을 은밀하지만 견고하게 정해 놓은 것이 ‘가족각본’이다. 우리는 스스로 가족 내 역할과 의무를 찾아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가족각본에 쓰여 있는 대로 역할극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다른 이유들 역시 우리의 가족각본을 드러낸다. 먼저 ‘동성커플은 출산을 할 수 없으니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살펴보자.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부부에게 “그럴 거면 왜 결혼했냐?”라고 묻거나 “너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혼외 출생률은 2.5%다. 칠레와 멕시코 등은 혼외출생률이 70%가 넘고, 아이슬란드와 프랑스는 60%대,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50%다. 한국은 유달리 출산과 결혼이 연결돼 있다. 결혼을 하면 출산을 해야 하고, 출산은 반드시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해야 한다. 조선시대에 적자와 서자를 차별했고, 지금도 미혼모를 백안시하고 특히 미혼부의 경우엔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던 모든 이유들이 이 때문이었다. 비혼 여성으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의 방송 출연을 반대한다며 방송국 게시판을 도배한 이들도 같은 이유다.
왜 결혼 밖의 출산과 결혼 안의 출산을 차별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에 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을 추적해 보면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일찍부터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자녀양육의 책임을 가졌다.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주로 남성이었다. 남성이 재산을 거의 독점하던 시절, 결혼이란 경계는 ‘어느 자녀가 상속인이 되어 재산상속의 법적 자격을 가질지 결정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남성에게는 자식이 생겨도 상속이나 양육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바깥 영역이 생기는 것이다. 남성에게 결혼 밖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해 의무를 지우지 않음으로써 남성은 결혼 밖에서의 성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즉 결혼 안과 밖의 자녀를 구분하는 제도는 “남성이 자신과 자신의 공식적 가족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재정적 결과를 피하면서도 성적 자유를 유지”하는 데 유용했던 것이다.
‘동성커플이 키우는 아이는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 역시 가족 내에서 여성(엄마)의 역할과 남성(아빠)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가족각본을 보여준다. 양육에는 반드시 성별이 다른 두 양육자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좋은 양육이라는 게 성별과 상관이 있는 것일까?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는 동성혼이 인정되기 11년 전, 1993년에 레즈비언 커플의 공동입양을 인정했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양육자의 성별보다 가족의 안정과 행복이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려 30년 전 일이다.
이 책의 미덕은 촘촘하고 섬세한 분석에 있다. 미국, 영국, 북유럽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의 사례까지 동서횡단하며 비교 분석한다. 또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근대를 거쳐 최근 사건까지 종단하며 연결성을 파헤친다. 구전설화와 고전소설, 드라마, 영화, 소송과 판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표현까지 텍스트로 삼는 저자 특유의 연구법이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저자는 묻는다. 대체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가족의 형식과 기능, 역할과 의무 등 ‘차 떼고 포 떼고’ 남는 가족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책임과 돌봄을 나누는 관계’일 것이다. 이 본질에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각본대로 사는 거 그만하고 본질에 충실하게 살아도 되지 않겠냐고, 저자는 얘기한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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