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줄어든 희망, 그렇게 90년대는 2020년대가 되었다

최재봉 2023. 8. 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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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데뷔했다가 1996년에 해체한 서태지와 아이들, 1994년과 1995년의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1997년 구제금융 시기의 금 모으기 운동, 그리고 이 책 지은이가 장기 1990년대의 끝자락으로 꼽은 2002년의 월드컵 응원과 촛불시위 등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들. 한겨레 자료사진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지음 l 돌베개 l 1만9000원

“1990년대는 과거의 시간이지만, 지금 시대는 민주화 이후,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소비사회 진입 이후, 경제위기 이후의 장기 국면에 속해 있다. 지금의 사회적 현상과 문제들은 1990년대로부터 기원한 것이 많으며, 그것들을 파고들다 보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야 할 일이 생긴다.”

사회학자 윤여일(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이 1990년대로 눈을 돌린 까닭이다. 그가 새로 낸 책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톺아보며 그것들이 지금 현실에 어떤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를 헤아린다. 이를 위해 그는 1990년대의 잡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1990년대의 특징 중 하나가 숱한 잡지의 명멸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학, 문화, 사상, 세대, 디지털, 젠더, 생태, 대중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 당시 잡지들의 기획과 특집에 비친 사회상을 추출한다.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제2장 제목이 우선 눈길을 끈다. ‘문제적 시대로서의 1990년대’. 1990년대가 문제적인 것은 그 시기에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들이 여럿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외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변혁의 전망이 흐릿해졌다. 국내적으로는 최초의 문민정부가 탄생했고,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며, 초고속 경제성장과 소비 지상주의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일거에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구제금융 이후 지표로서의 경제는 회복되었다지만, 그 사태를 계기로 도입된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논리는 지금까지도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

1990년대 한국문학의 특징은 ‘전장에서 시장으로’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사회’로 대표되는 1970, 80년대 문학지들이 이론가와 비평가 중심 체제였다면 1994년에 창간된 ‘문학동네’는 작가와 작품에 집중하는 편집 방침을 들고나왔다. 문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작가와 작품을 앞세운 이런 방침은 독서 시장에서도 먹혀들었다. 기존 문학지들 역시 ‘문학동네’의 작가·작품 중심주의를 좇는 한편에서는 그에 수반되는 상업주의 및 문언유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마르크스주의라는 강력한 중심을 잃은 사상계에서는 개별자, 타자, 욕망, 차이, 감각, 해체 같은 말들로 대표되는 소문자 담론들이 활발히 오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수입되어 문학과 예술의 지형을 흔들었지만, “관념주의 내지 상대주의를 취해 철학적 세계로 도피할 위험성”이 지적되기도 했다. 잡지계에서는 문학 중심주의와 거리를 둔 ‘문화/과학’ ‘상상’ ‘리뷰’ 같은 계간지들이 나타나 대중문화 또는 하위문화를 진지한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회적으로는 오렌지족 소동과 신세대 논쟁 등 세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언론은 신세대의 세련된 소비 문화를 추켜세우다가는 돌연 그들의 무분별한 사치와 퇴폐·향락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와는 다른 맥락에서 ‘문화/과학’은 “탈역사화와 탈정치화와 탈사회화”를 부추기는 ‘신세대 신화’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신세대론 같은 젊은 세대 담론은 그 뒤 88만원 세대와 삼포 세대, 엔(n)포 세대 등으로 이름과 성격을 바꿔가며 이어지고 있지만,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대상화하고 평가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1998년 월간조선이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6·25 전쟁관을 두고 “친북적이고 좌파적”이라며 비난하는 기사를 싣고 조선일보가 공격을 이어간 끝에 최 교수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44개 시민단체는 조선일보 취재 거부와 구독 거부, 보도자료 안 보내기 등 ‘안티조선운동’에 돌입했다. 이 운동은 지식인과 문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한 언론개혁운동으로 발전했다. “1990년 후반 사회비평 잡지계에서 조선일보는 그 자체로 하나의 화두였다.” 잡지 ‘인물과 사상’과 ‘아웃사이더’는 “언론개혁 및 안티조선운동과의 직간접적 연관 아래서 창간되었다.”

조선일보의 최장집 때리기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공산당 신문·방송’ 운운에서 보듯 반공주의와 레드콤플렉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배 세력이 내키는 대로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다. 이런 사상적 검열과 함께 1990년대에는 외설성과 음란성을 구실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사태도 빈발했다. 마광수 소설 ‘즐거운 사라’와 장정일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음란문서 제조죄로 처벌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한편에서는 가수 정태춘이 6년여에 걸친 음반 심의 거부 투쟁 끝에 음반사전검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영화사전심의 역시 비슷한 무렵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군제대자 가산점 법률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헌법 소원을 낸 이화여대 졸업생들에 대한 신상 캐기와 온라인 성희롱이 만연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적 대결이 사회적으로 노골화된 거의 첫 번째 사례이자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표현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91년에 창간된 ‘녹색평론’은 반경제성장, 반자본주의, 반근대문명을 지향하며 농업을 중심으로 한 “순환론적 삶의 형식”으로 생태위기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했다. 이런 주장은 근본적인 만큼 비현실적 이상주의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면서 인간과 생물계의 공멸 가능성이 운위되는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앞서간 현실주의라 해야 옳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는 “고도성장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음과도 같았다. 구제금융을 계기로 생존과 경쟁의 각박한 논리가 지배하는 가운데 “몰락에 대한 공포가 대중의 삶을 덮쳤다.” 사회적 사유와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약해졌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위기였다. 위기는 전 사회적 징후가 되었고 “희망의 총량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1990년대는 2020년대가 되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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