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미국-소련 직접 충돌한 ‘동북아전쟁’ [책&생각]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와다 하루키 지음, 남상구·조윤수 옮김 l 청아출판사 l 3만8000원
한국전쟁의 전모를 탐구한 와다 하루키(85) 도쿄대 명예교수의 ‘한국전쟁 전사’가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지은이의 주요 연구 분야는 소련·러시아사와 동북아 국제관계사인데, 소련·러시아사 연구의 최대 성과가 ‘러일전쟁’이라면, 동북아 국제관계사 연구의 주요 성과로 꼽히는 것이 ‘한국전쟁 전사’다.
이 책의 초판은 1995년 일본에서 출간돼 2000년 한국어로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초판은 소련 쪽 자료를 거의 참고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었다. 와다는 소련 붕괴 후 대거 공개된 한국전쟁 관련 비밀자료를 샅샅이 살펴 개전부터 정전까지 전모를 기술해 2002년 개정판을 출간했다. 이번에 한국어로 나온 ‘한국전쟁 전사’는 이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지은이의 한국전쟁 연구 결정판이 출간 20여년 만에 번역된 셈이다. 한국어판 추천사를 쓴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그동안 한국전쟁과 관련해 수많은 연구가 나왔으나, ‘전사’라고 할 만한 것은 와다 하루키의 이 책이 유일하다”고 책의 의미를 설명했다. 와다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전쟁에 관련된 나라들(남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의 언어에 두루 능통해 관련 자료를 직접 비교·검토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남기정 교수는 말한다.
지은이는 전쟁에 연루된 나라들의 각종 자료를 교차검증해 한국전쟁을 한반도에 국한된 전쟁이 아니라 ‘준세계전쟁’(초판), ‘동북아시아전쟁’(개정판)으로 규정했다. 전쟁에 참여하거나 전쟁을 지원한 나라들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하여 하나같이 심대한 내부 변화를 겪었다. “이 전쟁은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동북아시아 전쟁이었다. 중국 혁명과 한국전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됐다. 남북한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미국·중국·소련의 관계, 더 나아가 일본과 대만의 관계가 확정됐다. 또 이 전쟁으로 미-소 대립은 결정적인 단계로 진입하여 초강대국의 군사 대치라는 냉전 체제가 본격화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것은 어느 쪽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했는지를 비교적 분명히 밝힌 점이다. 지은이는 당시 남한의 이승만과 북한의 김일성이 모두 무력통일 전략을 앞세우고 있었으나, 개전의 방아쇠를 먼저 당긴 것은 북한이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북한의 선제공격을 역이용해” 남한과 미군이 함께 북진해 무력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전쟁의 제2막이 열렸다.
이런 사실과 함께 이 책은 소련의 스탈린이 이 전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밝히는 데도 공을 들인다. 스탈린은 처음에 김일성과 박헌영의 무력통일 전략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1950년에야 그 전략을 승인했다. 하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미군이 참전하자 소련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한국전쟁은 말 그대로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크렘린 안에서 한국전쟁 총감독을 맡았다. 그의 지휘하에 소련은 북한군과 중국군에게 대금 지불은 일정 기간 뒤로 미룬 채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후방 기지, 병기 생산 공장이 됐다.” 더 주목할 것은 미군과 소련군의 직접 충돌이다. 소련 공군이 중공군으로 위장해 한반도 상공에서 미군과 대결함으로써 한국전쟁은 사실상 ‘미-소 전쟁’으로 나아갔다.
전쟁은 3년여를 끌면서 처음 시작된 곳에서 멈추었다. “전쟁이 남긴 것은 파괴와 엄청난 죽음이었다. 파괴의 상처는 한반도 전역을 뒤덮었지만, 미국에게 공중 폭격을 당한 북한의 피해는 더 엄청났다.” 사망자 수도 남북 합해 300만~400만에 이르렀다. 1949년 남북 총인구가 2865만명이었으므로 열명 중 최소 한명꼴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전쟁의 영향으로 분단이 고착됐고 1천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한반도에서는 극심한 적대관계가 수십년 동안 지속됐다. 그 적대적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전쟁의 비극성을 키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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