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줄줄이 건 소망 활활 타오르면…흥겨움 불붙어 외치는 “낙화야!”

지유리 2023. 8.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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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핫플] (23) 경북 안동 하회마을 ‘선유줄불놀이’
선비들이 시회 열며 즐긴 불꽃놀이서 유래
만송정 숲아래 낙동강 모래밭에 자리잡고
환히 빛나는 새끼줄 보면 무더위도 저만치
관람객들이 “낙화야” 외치자 부용대 꼭대기에서 집채만 한 불덩이가 떨어졌다. 낙화는 소나무 가지 더미인 ‘솟갑단’에 불을 붙인 것. 혜성처럼 긴 빛 꼬리를 그리며 낙동강으로 향하는 낙화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안동=김병진 기자

“낙화야!”

경북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에서 외침이 울리자 건너편 64m 높이의 부용대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반짝하던 작은 불꽃은 금세 큰 덩이가 돼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아롱거리는 불티가 그 뒤를 따라 빛 꼬리를 그린다. 우주를 유영하던 별이 지구에 와 유성이 되는 순간이 이러할까.

“낙화야!”

열린 입을 다물기 전에 두번째 낙화가 이어진다. 이전보다 더 큰 불덩이다. 수많은 관람객은 얼어붙은 듯 숨을 죽인 채 누구 하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조용히 불빛만 바라볼 뿐이다. 예부터 양반들이 즐겨온 여름 유흥, 선유줄불놀이다. 조선 후기부터 1930년대초까지 행해지다가 명맥이 끊긴 것을 1997년 안동국제페스티벌 부대 행사로 재현했다가 2021년부터 하회마을 단독 행사로 열고 있다. 지난해 선유줄불놀이를 보러 18만명이 하회마을을 찾았을 만큼 인기 있는 볼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새끼줄에 매달린 1500개 낙화봉에서 흩날리는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안동=김병진 기자

◆더위 이기는 화려한 불구경=7월29일 안동의 낮 최고 기온이 34℃를 넘어섰다.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부채를 쥐고 실바람을 만드느라 바쁘다.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발그레 상기된 얼굴에 설렘만이 묻어난다.

오후 3시가 넘자 마을 곳곳을 구경하던 사람들 발길이 한곳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낙동강 모래사장. 더위는 아랑곳없이 돗자리를 펼치고 준비한 주전부리를 꺼낸다.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해 제대로 한 상 차린 이도 있다.

이들이 기다리는 건 선유줄불놀이다. 하회마을 선비들은 음력 7월16일이 되면 낙동강을 노니며 시회(詩會)를 열었다. 문학을 논하는 자리에 흥을 돋울 놀이가 빠질 수 없으니, 강·숲·절벽을 무대 삼아 즐긴 불꽃놀이가 바로 이것이다.

선유줄불놀이를 감상하기 좋은 자리가 바로 만송정 숲 아래 낙동강 모래사장이다.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낮부터 명당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하회마을 전체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불꽃놀이는 해가 지고 나서야 시작한다. 7월이면 오후 8시를 넘겨도 날이 훤하니 3시부터 자리를 잡았다면 너덧시간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긴 기다림이 지루하지는 않다. 함께 온 가족·친구들과 군것질하며 수다 떠는 것도 큰 재미니. 하회마을 입구엔 다양한 향토 먹거리를 파는 장터가 있다. 마을부터 장터까지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간식을 사 와 자리를 잡자. 볕을 가릴 양산이나 모자를 챙겼다면 더할 나위 없다.

선유줄불놀이의 백미는 ‘줄불’이다. 만송정에서 부용대까지 뽕나무 뿌리를 엮어 만든 새끼줄 다섯개를 연결하고 여기에 숯을 담은 낙화봉(숯봉지)을 걸어 불을 붙인다. 230m 새끼줄에 걸린 수백개 낙화봉이 공중에서 타오르며 불꽃을 쏟아내는 모습은 장관으로 유명하다.

“줄에 걸 낙화봉을 직접 만들어보세요.”

기자는 만송정에 마련된 ‘숯봉지 만들기 체험 부스’에 들렀다. 점화가 시작되기 전 누구나 낙화봉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다. 체험 비용 1만원을 내고 책상에 앉았다. 도우미가 한지를 꺼내고 펜을 건넨다.

“종이에 이루고 싶은 소원을 쓰세요.”

낙화봉 만들기 첫 순서는 숯을 감쌀 종이에 소원을 적는 것.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부자 되게 해주세요’ ‘기사 잘 쓰게 해주세요’ 등 욕심껏 원하는 바를 적은 종이 위에 말린 쑥을 일(一) 자로 가지런히 올린다. 이어 숯가루도 뿌린다. 김밥을 말듯 재료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꼭꼭 만 후 반을 접고 새끼를 꼬듯 꼬아 끝을 묶으면 완성이다. 부디 낙화봉이 활활 잘 타올라 빽빽이 적은 소망이 모두 이뤄지길 바라본다.

◆밤하늘 수놓은 1500개 낙화봉=드디어 오후 8시가 됐다. 축하 공연이 끝나고 이따금 돌아다니던 관객들도 제 자리를 찾았다.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던 해는 조금씩 절벽 뒤로 넘어가고 하늘은 빠르게 어두워진다. 사위가 고요해진 순간 누군가 소리친다.

“불이다!”

일제히 눈길이 만송정 숲으로 향한다. 낙화봉에 불을 붙이자 새끼줄 시작 부근에서 불꽃이 흩날린다. 불꽃은 춤을 추듯 천천히 부용대를 향해 움직인다. 한두개 일렁이던 불빛은 아직 강물을 비추기엔 미약하다. 금방 꺼질 듯 여린 빛은 금세 수십개·수백개로 늘었다. 새끼줄 하나에 낙화봉이 300개, 다섯개 새끼줄에 모두 1500개의 낙화봉이 걸린다. 점점이 빛을 발하던 불티는 셀 수 없이 많아져 이제 하늘엔 붉은빛 장막이 걸렸다. 새카만 밤하늘에 불꽃 이불이 펼쳐졌다. 일렁이는 그 빛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낯설고 황홀하다. 하루 종일 괴롭히던 더위의 존재도 잊고 주위 관람객이 내뱉는 탄성과 감탄도 저만치 물러간다.

줄불이 절정을 향해가면 ‘선유(船遊)’가 시작된다. 과거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시를 읊던 양반들의 선유 시회를 재현했다. 수면에 빛이 둥둥 떠다니는 ‘연화(蓮花)’도 곧바로 이어진다. 달걀 껍데기 속에 기름을 묻힌 솜을 넣어 등불을 만들었다. 어둠에 잠긴 검은 강물은 이제 주황색 물감을 푼 듯 다채로운 색이다. 불꽃놀이가 최고조에 이르면 드디어 낙화가 시작된다.

“얼마 전 전국 곳곳에서 물난리가 있었죠. 수해 복구가 잘 이뤄져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그 마음을 담아 외쳐볼까요? 낙화야!”

본래 낙화는 뱃놀이하던 양반들이 시를 짓고 ‘낙화야’를 외치면 부용대 꼭대기에서 바싹 마른 소나무를 묶은 ‘솟갑단’에 불을 붙여 절벽 아래로 내던지던 놀이다. 시작의 즐거움을 다 같이 누리던 놀이였다. 올해는 시를 외는 대신 우리 이웃의 평안을 빌며 낙화를 감상한다.

안동 하회마을 선유줄불놀이는 9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10월에는 7·28일 2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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