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악성민원, 녹음 시작합니다”… 국세청, 대민공무원 보호 나섰다

이영준 2023. 8.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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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민원실장 실신 후 의식불명
133개 세무서에 녹음기 첫 보급
공무원증 케이스… 고지 후 사용
“청원경찰 배치 등 보호 강화해야”

국세청이 3일 전국 133개 세무서 민원봉사실에서 근무하는 세무 공무원들에게 민원인 응대 시 사용할 녹음기 보급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악성 민원인을 대면 응대할 때 녹음 채증을 하는 용도다.

전국 모든 세무서 민원실에 녹음기를 배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달 24일 경기 동화성세무서 A민원봉사실장이 민원인을 응대하다 실신해 이날까지 11일째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이 민원실 녹음기 배치의 기폭제가 됐다. 대민 공무원이 위기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커졌고, 국세청이 적극 조치를 취한 것이다. 녹음 방식 대응이 세무서뿐 아니라 주민센터,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교사 등 대면 업무를 맡는 다른 공무원 직군으로 확산할지 주목된다.

국세청 녹음기

녹음기는 목에 거는 신분증 케이스 모양이다. 직원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민원인에게 대화를 녹음한다고 고지한 뒤 녹음을 시작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공무원은 민원처리법 시행령, 개인정보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민원인을 응대할 때 녹음을 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는 전화 자동 녹음 등이 활성화됐지만 대면 공무원들도 필요시 녹음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공무상 녹음을 허용하는 규정이 있어도 공무원들이 민원인 음성을 녹음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A실장의 사례도 실신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민원인의 음성 증거는 없이 폐쇄회로(CC)TV 영상과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만 있어 국세청은 악성 민원 때문에 의식을 잃었다는 인과관계 규명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으로 학교에선 학생 측이 교사의 발언을 녹음해 민·형사 소송 증거로 제출하는 일이 벌어지는 터라 공무원과 비공무원 간 대응력 격차를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국세청이 악성 민원에 맞서 강력 대응에 나선 것은 전국 세무서 민원봉사실마다 매일같이 고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납세 의무에 따라 세금을 내는 행위를 민원인 관점에서 읽으면 ‘지출해야 한다’는 뜻이니 그 어떤 관공서보다 민원의 강도가 센 편이다. 폭언과 욕설을 넘어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거나 흉기를 들고 찾아오는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민원봉사실뿐 아니라 과세 부서에도 민원 창구가 따로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세무 공무원 전부가 악성 민원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라는 말을 앞세워 민원인이 폭력적 언사를 해도 공무원은 절차에 따라 응대해야 한다. 민원인에게 진정 요청을 하거나 동료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되면 119나 경찰에 신고하는 식이다. 국세청이 악성 민원인 대면 시 채증용 녹음기를 전국 민원봉사실에 보급했지만, 이 또한 사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용한 장치다. 시중은행에서 활용하는 청원경찰 배치는 연 100억원가량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도입되지 않고 있다.

민원의 빈도가 증가하고 그중 악성 민원이 동반해서 늘어나는 와중에 경기 동화성세무서의 A실장이 민원인을 응대하다 실신하는 일이 벌어지자 세무 공무원들 사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확산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2만여 직원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악성 민원인을 응대한 경험이 있다 보니 A실장 사례를 남 일 같지 않게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실장이 실신한 이후 국세청에선 조직적인 대응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오호선 중부국세청장은 대응력을 강화한 민원 응대 요령 매뉴얼을 만들어 경기 지역 관할 세무서에 배포했다. 국세청이 이날 민원인 대화 채증을 위한 녹음기를 신속 보급한 것도 같은 맥락의 조치다. 그러나 세무 공무원들 사이에서 녹음·난동·협박 등의 수단을 총동원하는 일부 민원인으로부터 업무수행 중인 공무원들을 보호할 더욱 획기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청원경찰 배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가장 많이 제기된다.

한편 국세청은 이날 녹음기를 보급한 데 이어 악성 민원 대응 및 직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갈 계획이다.

세종 이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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