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충전기 천국' 만든 네덜란드…"전기차도 휴대폰처럼"

헤이그(네덜란드)=정한결 기자 2023. 8. 4.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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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전쟁3 전기차 시장 성장은 계속 될까?]④네덜란드
데이터 기반 인프라 구축…정부 지원 받던 충전소가 정부 수입원으로
전기차 인센티브 없어져도 가격 하락→수요 확대 전망
[편집자주] 편집자주: 전기차 시장은 세제 혜택과 보조금 없이도 계속 성장할까. 충전 인프라 구축은 전기차 보급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차전지(배터리) 시장의 향배는 배터리 수요를 견인하는 전기차 시장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전기차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배터리 수요 역시 함께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는 전기차 시장 선도국 중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의 사례를 들여다 봤다. 충전 인프라가 취약해도 전기차 판매율 1위국이 된 노르웨이, 충전 인프라 확충으로 전기차 보급률을 끌어 올린 네덜란드의 사례가 줄 수 있는 함의를 짚어 본다.

르벤 얀 게르벤디 네덜란드국립충전인프라어젠다(NAL) 회장. /사진=정한결 기자.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려면 언제, 어디서든지 전기차 충전이 가능해야 합니다. 휴대폰을 충전하듯이요."

네덜란드는 유럽연합(EU) 내에서 전기차 충전기가 가장 많은 국가다. 전국에 설치된 공공·개인 충전기 합계는 올해 6월 기준 54만8259대. 면적은 한국의 절반에 못미치는데 충전기 수는 20만5000여 대인 한국보다 2배 이상 많다. 100㎞당 충전기 대수도 최근 몇 년간 유럽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2위 룩셈부르크의 면적이 제주도 크기임을 비교하면 사실상 유럽 내 맞수가 없다.

촘촘한 충전망을 구축한 까닭에 전기차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신차의 23.7%가 전기차였다. 역시 한국(9.8%)보다 2배가량 높다. 이같은 충전 인프라를 추진하는 정부 프로젝트가 네덜란드국립충전인프라어젠다(NAL)다. 지난달 20일 네덜란드 행정수도 헤이그에서 게르벤 얀 게르벤디 NAL 회장과 네덜란드 기업청(RVO) 관계자들을 만나 충전 인프라 구축의 노하우와 전기차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네덜란드 전기차 충전 인프라 핵심은 '데이터'
왼쪽부터 피터 반 케르코프 네덜란드 기업청(RVO) 지속가능모빌리티 수석, 디스 두루쿱 RVO 모빌리티 모니터링 수석, 게르반 얀 게르빈디 NAL 회장. /사진제공=정한결 기자.
게르벤디 회장은 전 유럽의회(MEP) 의원 출신이다. 10여년의 의원 활동 기간 내내 환경·공공보건·식품안전위원회에 소속돼 기후변화에 대응해왔다. 그는 NAL이 출범한 경위에 대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0%가 교통 부문에서 나온다"며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면 교통수단의 전동화가 필요하고, 전동화에는 충전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전기차를 타게 만들려면 '주행거리 불안증'을 해소해야 하는데 이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우선 바꿀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게르벤디 회장은 "휴대전화를 충전하듯 어디에서든 쉽고 빠른 충전이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심사숙고해 정책을 시행했다"고 부연했다. 직장과 집, 도심 내 등 어디에서도 충전할 수 있도록 완속 충전기 위주로 우선 보급을 크게 늘렸고, 급속 충전기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네덜란드 충전 인프라의 핵심은 데이터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라 도심 위주로 공용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온갖 데이터를 활용한다. 우선 전국 국토를 500㎡ 크기의 구역으로 나눈다. 구역 내에 125가구 이상이 거주(도심)한다면 최소 1개의 충전기 설치를 추진한다. 아직 설치가 안 됐다면 해당 구역은 흰색으로 구분한다. 도심이 아닌 시골 지역은 주로 사유지 내지 농경지다. 회색으로 분류되며 공용충전기 설치를 요하지 않는다.

네덜란드 전국 충전 네트워크 지도. 픽셀 하나당 500㎡ 크기의 구역을 의미한다. 회색은 공용 충전기가 필요 없는 시골 사유지 내지 농경지. 흰색은 충전기가 필요한 도심 지역. 녹색은 충전기가 충분한 지역을 의미한다. /사진=네덜란드국립충전인프라어젠다(NAL) 홈페이지 갈무리.

흰색 구역이 공용충전기를 갖추게 되면 초록색으로 전환된다. 충전기 위치가 변경되거나 고장 날 경우 다시 흰색으로 돌아간다. 충전기를 설치했더라도 충전기가 거의 항상 사용되는 경우 인구밀도가 높은 것으로 간주한다. 해당 지역은 '충전기 불충분'으로 구분해 더 많은 충전기 설치를 장려한다. 준공용(마트·백화점 등)충전기만 있는 지역은 파란색으로, 추후 공용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국 충전 네트워크 지도는 분기마다 갱신된다. 2020년 네트워크 구축 당시 충전기가 없는 '흰색' 구역이 80%였지만, 3년 만에 40%로 줄었다. 네덜란드는 아파트 등에도 충전기 설치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 중이다. 피터 반 케르코프 RVO 지속가능모빌리티 수석은 "오는 2025~26년까지 흰색 구역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각 지역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암스테르담 같은 대도시는 이미 길거리 충전을 활용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터뷰를 위해 찾은 헤이그 곳곳에서도 길 중간중간 배치된 충전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민간 사업자에 충전기 설치 및 운영을 맡기는데, 구역별로 입찰 방식을 동원한다. 이용률이 낮은 충전기가 드물어 충전소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케르코프 수석은 "2015~16년만 해도 시정부가 충전사업자를 지원해야 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입찰로 수익을 낸다"며 "(충전기 사업이)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았다"고 강조했다.
인센티브 사라져도, 전기차 가격이 내린다…"수요 굳건"
네덜란드 헤이그시 내 한 거리 전기차 충전기에서 테슬라 차량이 충전하고 있는 모습. /사진=정한결 기자.
네덜란드는 충전 인프라 구축 외에도 총 세 종류의 세금 인센티브를 통해 전기차 구매를 장려해왔다. 그러나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혜택을 점점 줄이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당장은 주춤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게르벤디 회장은 "네덜란드에서 전기차를 모는 것은 그동안 내연기관차에 비해 매우 경제적인 선택이었다"며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값이 오르면서 전기차의 이점이 사라졌지만, 결국 전기료가 내리면서 다시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완성차업체 간의 경쟁으로 전기차 수요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각국 정부의 인센티브가 줄고 있지만 테슬라가 시작한 가격 전쟁으로 전기찻값이 내리면서 상쇄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르벤디 회장은 "지금은 과도기"라며 "하지만 자동차업계의 발전 속도를 봤을 때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게르벤디 회장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도 전기차 전환과 충전 인프라 구축이 문제없이 이뤄질 것으로 진단했다. 이제는 오히려 전기차 충전기가 사라지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당장은 공공 전기충전소 구축이 필요하지만 10~15년 후면 전기차 주행거리도 늘어나고, 충전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 도심 내에 많던 주유소가 교외로 차츰 밀려난 것처럼 전기차 충전소도 그런 날이 올 수 있다"며 "더 먼 미래에는 자율주행차 때문에 개인 소유 차량이 줄어들어 인프라 구축이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헤이그(네덜란드)=정한결 기자 han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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