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면 일하지 않을 권리' 법에 못박자"…노동자 보호 나선 유럽

신은별 2023. 8. 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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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근로자 "근로시간 1/4 고온 노출"
노동계 "법 바꿔 '안전할 권리' 챙기자" 
스페인 등은 '작업 가능 온도' 법 규정
지난달 1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한 노동자가 거리에서 작업을 하던 중 물을 머리에 뿌리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세비야=AFP 연합뉴스

지구온난화는 노동자, 특히 야외노동자를 폭염에 더 자주, 심하게 노출시킨다. 이는 유럽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유럽연합(EU) 연계기관인 '생활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유럽 재단'(유로파운드)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EU 노동자 23%가 노동시간 중 최소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고온에 노출된다. 농업·산업, 건설 분야 노동자들 사이에선 같은 응답 비율이 각각 36%와 38%로 올라갔다.

그러나 폭염 대책을 마련하는 속도는 폭염 위험이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은 "극소수 유럽 국가에만 폭염 중에 노동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폭염 상황에서 고용주의 의무·책임을 강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특히 '노동이 불가능한 온도를 법에 못 박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독일서 고개 든 '더위 피할 권리'

독일엔 폭염 시 고용주의 행동강령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다. 3일(현지시간)독일 언론 ZDF 등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26도 이상으로 오르면 고용주가 단계별로 관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작업장 조례·규칙에 명시돼 있다. 근무시간 유연화, 복장 규정 완화 등이 단계별 조치에 해당한다. 35도 이상은 작업하기에 부적합한 환경이므로, 고용주는 근무 중단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노사가 구체적인 폭염 대응책을 합의한다.

최근 폭염 빈도가 늘면서 근로기준법 등에 '폭염을 피할 권리'를 명시해 노동자 스스로 '폭염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적극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조례·규칙은 '권고'에 그치는 만큼 고용주를 강제할 방안을 만들자는 취지다. 유로뉴스는 "독일인들이 직장에서 덥지 않은 상태로 일할 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독일 공공서비스노조 베르디는 '더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유럽 전역에서 폭염이 극심했던 지난해 7월 독일 쾰른에서 한 남성이 호스에서 나오는 물에 더위를 식히고 있다. 쾰른=AFP 연합뉴스

프랑스 노조 "노동법에 '작업불가 온도' 새기자"

프랑스에서도 폭염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프랑스에 폭염이 닥친 날이 1989년 이전엔 연평균 1.7일이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9.4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33일을 기록해 관측 이래 최고치였다. 이에 정부는 지난 6월 '국가 폭염 관리 계획'을 발표해 노동자의 안전을 챙겼다. △근무 시간 조정 및 작업 중단을 적극 실시하고 △기업별 대응 계획을 마련하고 △위험 정도를 매일 평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정부 계획이 고용주의 행동으로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한다.프랑스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CGT)은 "노동법을 지구온난화에 맞춰야 한다. 특정 온도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도록 노동법을 바꿔야 한다"고 지난달 요구했다. 현행 법은 "고용주가 노동자 안전 및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만 규정한다. '노동자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작업을 중단한다'는 규정도 있지만, 노동자가 이 조항을 활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프랑스 최대 노조 노동총연맹(CGT)은 "노동법에 작업할 수 있는 최대 온도를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CGT 홈페이지 캡처

'고온' 무뎠던 영국마저 민감… 스페인 등 이미 시행 중

통상 서늘한 여름을 보내는 영국에서도 작업 불가능 온도를 법제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40도 이상으로 기온이 치솟는 등 기상이변을 겪은 탓이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일반노동조합(GMB)은 지난해 '폭염 시 작업장 온도가 25도 이상이면 업무를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일하기 너무 덥다 법' 제정을 요구했다. 현행 법은 "고용주는 작업장 온도를 '합리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만 돼있다. 고용주에게 바람직한 작업장 환경을 권고하는 지침에도 '작업장이 16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하한선만 명시돼있는데, 상한선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미 작업장 최고 온도를 법에 명시한 국가도 있다. 벨기에, 헝가리, 스페인 등이다. 벨기에, 헝가리는 작업 강도에 따라 각각 18~29도, 27~31도를 최고 온도로 규정한다. 더위가 극심한 스페인에서는 지난 5월 폭염 시 회사가 근무 시간을 수정하거나 단축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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