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전례없는 대학살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조승희, 그는 왜 괴물이 되었나?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조승희, 그는 왜 괴물이 되었나?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외톨이가 보낸 소포 -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라는 부제로 전례 없는 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그날을 조명했다.
2007년 4월 15일,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는 일요일임에도 축제로 열기가 뜨거웠다. 그리고 모두가 축제를 즐긴 다음 날, 누군가가 건물 밖으로 절대 나가기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밖에는 엄청난 속도로 학교로 오는 경찰차와 헬기 등이 눈길을 끌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오전 7시, 몰리는 어디선가 들리는 비명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문을 열어보지 복도에는 피 묻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몰리는 핏자국을 따라 친구 에밀리의 방으로 갔다.
힘들게 연 문 안에는 총에 맞고 쓰러진 에밀리와 기숙사 사감이 발견됐다. 현장에서 즉사한 사감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한 에밀리. 두 사람은 이른 아침 누군가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것이었다.
범인은 영문학과 4학년 조승희. 그는 희대의 살인마이자 악랄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두 사람을 살해한 후 조승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학교도 평온했다. 캠퍼스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고 범인은 외부인으로 추정되어 학교에 이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 이에 학생들은 평화롭게 등교를 하고 있었다.
이날 가장 많은 강의가 있던 곳은 노리스 홀. 3층 건물에 7개의 강의실이 있는 2층, 많은 이들이 노리스 홀로 등교 중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조승희도 있었다.
조승희는 가방에 넣어 온 쇠사슬과 자물쇠로 건물의 문을 잠갔다. 그리고 문을 열면 폭탄이 터질 것이다라는 메모까지 붙였다.
강의실을 찾아온 조승희는 두 번이나 강의실 안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밖에서 수업을 못할 정도로 공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소음은 멈추지 않았고 강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문을 다시 연 것은 앞서 문을 열었던 조승희. 그는 무자비한 총격을 시작했다.
앞서 들려왔던 공사 소음은 공사 소리가 아니었다. 조승희는 207호를 찾아오기 전 206호에 가서 이미 총격을 가했던 것. 첫 번째 강의실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피하거나 도망갈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총격을 당해야만 했다.
총격이 계속되자 주변 강의실에서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했다. 이에 205호 학생들은 문을 책상과 의자 등으로 막고 온몸으로 밀며 문을 막았다. 조승희는 몇 번의 총격으로 문을 열려했지만 결국 열리지 않자 다른 목표를 찾아갔다.
첫 총격이 시작된 지 불과 2분, 211호 교수님은 밖을 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학생들에게 서둘러 신고를 하라고 했다. 이에 한 학생은 911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신고를 마치기도 전에 조승희가 들이닥쳐 총격을 퍼부었다. 무엇을 요구하거나 소리를 지르지도 않은 범인은 침묵 속에 학살을 했고, 이는 신고 중이던 휴대전화를 통해 911에 중계가 되고 있었다.
이를 본 또 다른 학생은 죽은 척 누워있다가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향해 다가갔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휴대전화를 가렸다. 그리고 조승희가 강의실을 벗어난 순간 신고를 이어갔다.
ROTC 매튜는 총을 든 조승희를 막아보려고 했으나 근거리에서 조승희의 총에 맞아 바로 사망했다. 이에 그의 가족들은 자신을 지키기 않고 범인을 잡으려 한 그의 행동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후 그와 같은 교실에 있던 한 생존자의 어머니는 그 덕분에 자신의 딸이 살았다며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 다른 강의실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존경받는 학자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총소리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는 몸과 의자로 창문을 깨뜨리고 학생들에게 밖으로 뛰어내리라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뜻 뛰어내리지 못했고 우왕좌왕했다. 그러는 와중 교수님은 강의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는 온몸으로 문을 막아 학생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문 하나를 두고 조승희와 대치한 교수님. 교수님은 조승희의 총탄이 날아오는 중에도 고통을 참아내며 문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교수님이 쓰러졌고 강의실 문이 열리며 조승희는 또다시 난사했다. 끝내 사망한 교수님. 그러나 해당 강의실에서는 미쳐 뛰어내리지 못한 한 학생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사상자는 없었다.
이때 학교로 출동한 경찰은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승희는 다시 강의실을 찾아와 쓰러진 이들에게 총을 쏘고 또 쏘았다.
그 시각 무장한 경찰들이 노리스 홀에 진입했다.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지만 이미 현장은 참혹했다. 바닥에는 얼마나 피가 흘렀는지 마치 재앙의 현장 같았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이 터졌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 범인이에요"라고 외쳤다. 학생이 가리킨 곳으로 가자 한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조끼를 입은 아시아계 남자, 조승희였다.
그리고 그를 본 특수기동대 대원은 "블랙 티켓"이라고 외쳤다. 블랙 티켓은 사망자를 뜻하는 암호, 조승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경찰과 911은 서둘러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당시 현장을 기억하는 생존자들은 "피날레가 없는 불꽃놀이가 계속되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조승희가 범행을 한 시간은 단 9분, 그 시간 동안 그는 174발의 총을 쏘았고 32명이 죽고 29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토록 집요하고 잔인하고 무자비한 살인마는 처음이었다. 이 사건은 바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전례 없는 대학살 사건에 전 세계 언론이 모여들었고, 총기 난사범이 한국인 유학생으로 밝혀지자 더 큰 파장이 일었다. 한국 국적의 미 영주권자였던 조승희.
조승희는 누구인가, 그는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알아내기 위해 그의 학교 친구들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몰랐다. 3년이 넘게 같은 학교에 다녀도 친한 친구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조승희는 그림자, 외톨이라고 불리며 스스로 벽을 만들었다. 1992년 8살 때 이민을 온 조승희, 좋은 환경에서 아들을 키우고자 큰 결심을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온 조승희.
그러나 그는 중학생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증상인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던 조승희. 부모님은 그의 치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큰 문제없이 명문대까지 진학했다.
사건 이틀 후 NBC 방송국에 조승희가 보낸 우편물이 도착했다. 선언문과 사진, DVD가 들어있던 우편물. 그는 총과 무기를 들고 무언가를 향한 적대감을 표출하며 직접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DVD에는 범죄를 과시하는 듯하기도 하고 범행의 이유를 알리는 것 같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다. 이 우편물을 조승희는 기숙사에서 2명을 살해한 후 노리스 홀로 향하기 전 발송한 것이었다.
두 자루의 권총을 소지했던 조승희. 총기를 한 달에 한 자루만 구매할 수 있었던 버지니아 주에서 그가 두 자루의 총기를 소지했다는 것은 한 달 이상 준비하고 계획했다는 반증이었다. 행적을 따라갈수록 치밀하게 계산된 조승희의 범행. 그는 총기 구매 후 사격을 연습하고 범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한 후 영상과 사진을 남겼다.
배경과 의상이 모두 다른 사진, 이는 수일에 걸쳐 촬영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시나리오를 쓰듯 범죄를 기획한 조승희.
영상 속 그는 주변의 증언과 달리 분노에 가득 차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또한 그는 가진 자에 대한 분노를 하기도 했다. 좌절감과 분노에 차올랐던 조승희.
주변에서는 그가 언젠가 무슨 일을 저지를 거 같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깊게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수업을 들었던 조승희는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글 쓰는 데 관심이 많았던 그는 수업에는 꼬박꼬박 참여했다. 책을 출근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던 조승희. 그의 글에는 인간 혐오가 가득했다.
조승희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했던 주변 학생들과 담당 교수. 하지만 학과장 루신다 로이 교수는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는 개인 교습까지 해주며 면담을 이어가며 그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려고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조승희는 겨우 열었던 마음의 문을 다시 닫아버리고 스스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축하한다. 너는 내 삶을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어. 너 때문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 내 형제자매 자식들 같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죽을 거야. 너희는 결코 우리가 어디서 공격할지 너희를 어떻게 죽일지 모를 거야. 너희는 항상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거야. 내 인생을 파괴해 버리고 나니 행복해? 이제 행복해?"라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가득한 망상에 빠진 글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이에 전문가는 "결정적인 트리거는 주위로부터의 거부라고 본다. 그런데 그는 그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 이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 이들이 문제다. 그것이 자꾸 쌓이면 게이지가 올라간다. 결국 이는 세상을 향한 증오, 분노, 공격성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조승희의 모습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은 가족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야 아들의 학교 생활을 알게 된 부모님. 사건 전날에도 그와 통화를 했던 그의 어머니. 어머니가 그에게 전한 마지막 말은 "승희야 사랑해"였다.
모든 걸 되돌리기엔 늦은 시간, 조승희 누나는 가족을 대표해 사죄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는 "승희는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저는 승희를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동생의 말할 수 없는 행동에 저희 가족은 큰 유감을 느낍니다"라고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23살의 조승희는 32명의 꿈 많던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생존자들에게도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한 생존자는 총기 규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또 다른 생존자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폭력 방지에 힘썼다.
또한 안타깝게 사망한 매튜의 가족들은 총기 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매튜의 여동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심을 말하고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감정이 있고 어떤 이유로든 괴롭게 된다.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앞으로 생길 비극과 고통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라고 말해 큰 울림을 전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악은 왜 자라는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범죄를 저지른 이유를 밝힌다고 해도 어떤 이유에서든 끔찍한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임에는 분명하지만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분명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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