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한국 水泳의 황금 세대
한국 수영은 그동안 ‘천재’ 한 명에 기대를 걸어왔다. 나라의 기틀이 다져지던 1970년대엔 ‘아시아의 물개’로 이름을 날렸던 고(故) 조오련, 1980년대엔 ‘아시아의 인어’로 불렸던 최윤희가 있었다. 그러나 애칭이 말해주듯 이들도 아시아권을 벗어나진 못했다. 결코 실력이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환경이 넉넉하지 못했고,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도 부재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박태환(34)이 등장했다. 고교생이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거머쥐더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자유형 400m)을 따내며 한국 선수가 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량에 도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때부터 한국에서 수영은 생존을 위해 배우는 스포츠 그 이상이 됐다. 박태환은 대한수영연맹의 지원 아래 수영 강국인 호주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하고, 세계적 지도자인 마이클 볼(호주) 코치에게 배우며 한국 수영사(史)를 새로 썼다.
최근 다녀온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은 박태환을 보며 물속에 뛰어든 이른바 ‘박태환 키즈’들이 만개한 현장이었다. 황선우(20)는 자신의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남자 자유형 200m에서 8명 중 3위를 해 동메달(1분44초42)을 목에 걸었다. 그는 지난해 부다페스트 대회(은메달)에 이어 2회 연속 세계수영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됐다.
이호준(22)은 황선우와 함께 자유형 200m 결선에서 물살을 갈라 6위를 했다. 한국 선수 2명이 세계선수권 경영 종목 결선에 동시에 오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우민(22)은 아시아 선수 중 유일하게 남자 자유형 400m 결선까지 올라 최종 5위(3분43초92)에 안착했다. 이들에 양재훈(25)이 합세한 계영 800m 대표팀은 결선에서 한국 신기록(7분04초07)으로 6등을 했다. 그동안 세계선수권에서 이렇게 다양한 선수가 활약하고 많은 낭보들이 전해진 때가 있었을까.
현장에서도 관심이 느껴졌다. 선수들은 역영을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을 거쳐 간다. 이때 얼마만큼 기자들이 몰리느냐가 ‘스타’를 구분하는 척도다. 황선우가 동메달을 땄을 땐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기자들도 취재에 합류했다. 이호준은 중국 기자들에게 한동안 붙잡히기도 했다. 한 중국 기자는 “항저우(아시안게임·9월 개최)에서 경쟁할 선수들 아니냐”며 “한국 수영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금 세대’가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다. 이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 초에도 호주로 넘어가 현지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옥 훈련을 견뎠다. 혼자 해외를 떠도는 대신 함께하며 더욱 강해졌다.
한국 수영은 세계 무대에서 외로웠다. 이젠 아니다. 스포츠에서 선의의 경쟁은 투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황금 세대의 다음 무대는 중국 항저우.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겨루는 기분 좋은 경쟁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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