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바다거북처럼

김희선 소설가·약사 2023. 8.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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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해안에 사는 어떤 바다거북들은 짝짓기를 한 다음 알을 낳기 위해 남아메리카 동해안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그 드넓은 대서양을 헤엄쳐 건너는 거다. 놀라운 것은 바다거북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다. 거북들은 오래전, 그러니까 약 1억300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사이의 해협을 건너 다녔다. 그런데 그땐 아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쪼개지기 전 곤드와나대륙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아주 좁은 물길을 쉽게 헤엄쳐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곤드와나 대륙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남극대륙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우직한 바다거북들은 조금씩 멀어지는 해협을 아무 생각 없이 건너가 알을 낳았다. 마침내 대륙은 완전히 갈라져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되었지만, 바다거북들은 여전히 1억 년 전의 습관대로 넓디넓은 바다를 건너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이런 기묘한 일이 거북들에게만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인간들 또한 저 순진한 바다거북들처럼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매일 매 순간 뭔가를 되풀이하니까. 예를 들자면, 오늘처럼 흐리고 비 오는 날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일 같은 것. 예전에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열량 부족에 시달렸고, 에너지원이 될 당분을 찾아 헤매며 살았다. 달콤한 맛이 나는 과일엔 생존에 꼭 필요한 당분이 풍부했기에, 인간은 단맛이 나는 걸 삼키면 뇌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분비되며 기분이 좋아지도록 진화했다. 그래야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야생에서 달콤한 과일을 찾아내 먹을 테니까. 수십만 년 전 생긴 이 버릇은, 열량이 부족하기는커녕 남아도는 현재까지도 우리 안에 그대로 남아, 오늘처럼 흐린 날 냉장고 속 아이스크림을 찾게 만든다.

그렇다고 지금 먹던 아이스크림 뚜껑을 닫고 도로 냉장고에 넣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바다거북들이 그렇게도 열심히 대서양을 헤엄쳐 건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집에서 키우는 반수생(半水生) 거북이 더 좋아졌으니까. 겉모습은 많이 다른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정말 닮았고–어쩌면 거의 똑같으며–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흐린 날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에서 키우는 거북은 돌 위에 올라가 UV램프를 쬐며, 머나먼 곳에 사는 바다거북은 영문도 모른 채 망망대해를 건넌다는 것뿐이니 말이다.

/김희선 소설가·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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