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軍·법무부·道公 출신… 감리업체는 ‘전관 집합소’

정순우 기자 2023. 8. 4.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근 빼먹은 LH] ‘전관 임원’ 홍보하는 감리업체
3일 경기 오산시 ‘오산 세교2 A6′ 아파트에서 작업자들이 보강 철근이 빠진 지하 주차장 기둥의 보강 공사를 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예정된 보강 공사는 기둥 상부에 천장 하중을 나눠 받쳐줄 철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연합뉴스

지하 주차장 철근 누락이 확인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곳 중 3곳의 감리를 맡은 M건축사 사무소. 이 회사 전체 임원 65명(2018년 기준) 중 22명이 LH 출신이었다. LH 출신뿐만 아니다. 이 회사엔 국토교통부·법무부·지자체 출신들도 임원으로 포진해 있었다. 여기에 육해공군 군(軍) 출신 25명이 임원으로 등록돼 있었다.

감리는 설계 시공상의 오류를 잡아내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현실은 ‘전관들의 놀이터’처럼 전락해 있다. 철근 누락 사태로 LH를 둘러싼 이권 카르텔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실제 건설 현장에서는 LH뿐 아니라 정부 부처, 군,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전관 영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감리회사 홈페이지나 소개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번 철근 누락에 연루된 감리 업체 대부분 주요 임원 자리에 전관이 배치돼 있었고, 일부는 그 사실을 홍보·마케팅 수단으로까지 활용하다 최근 문제가 되자 이를 삭제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감리 업체는 발주처로부터 돈을 받는 을의 입장이다 보니 로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기업들이 앞다퉈 발주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영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임원 78%가 전관인 감리 회사

M사는 지난 4월 지하 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의 감리를 맡았고, 최근 철근 누락이 적발된 LH 아파트 15곳 중 3곳의 감리에 참여했다. M사는 최근 5년 사이 설계·감리 오류로 LH로부터 5번이나 벌점을 받았지만, 같은 기간 LH로부터 설계·감리 용역을 900억원어치 넘게 수주했다. 감리업계 관계자는 “LH 출신 임직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납득할 수 없는 수주 실적”이라고 말했다. M사 소개 자료에는 LH 영업만 전담하는 임원이 18명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 중 17명이 LH 출신이고, 나머지 한 명도 LH 외부 자문을 맡던 교수다. 국방 담당 임원 20명은 대부분 공병단 단장, 군수 참모, 부대 시설대장 등 군에서 발주 관련 보직에 있었다. 이 업체는 전체 임원의 78.4%가 이 같은 전관이었다.

전관을 영업에 활용하는 것은 M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철근 누락이 발견된 또 다른 LH 아파트의 감리를 맡은 D사도 경기도, 경기주택도시공사(GH), 행정안전부, 서울시, 대구도시공사 등 다양한 곳의 전관을 임원으로 영입했다. 이들 대부분이 공직에 근무하던 시절 주택도시실장, 도시개발본부장 등 공사 및 용역 발주와 관련 있는 직군에 근무했던 것으로 돼 있다. LH 출신이 2014년 설립한 S사는 설립 당시 아무런 실적이 없었음에도 첫해부터 LH의 아파트 설계용역을 수주했고, 2019년엔 감리 실적이 없는 상태로 감리 용역을 수주했다. 3년 전에는 LH가 주최한 설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전관들은 감리업체에 일감을 주는 발주처에서 관련 업무를 하다, 퇴직 직전에 보은(報恩) 성격으로 감리업체에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이야기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감리회사 임원 대부분이 전관 출신이라는 것은 사업을 수주하는 영업맨만 있고, 실제 감리 업무를 하는 기술자의 역할이나 비중이 그만큼 미약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권 카르텔 놀이터 된 감리업계

무분별한 전관 영입은 공공에서 발주하는 용역, 특히 감리 분야에서 심각하다. 민간 건설 현장에선 정해진 가격에 맞춰 응모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최종 감리 업체를 선정한다. 반면 LH는 가격과 기술력 등을 평가하는 ‘종합심사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군을 포함한 공공 기관이 발주하는 다른 공사도 마찬가지다. 종합심사제는 최저가 입찰제로 인한 서비스 질 저하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심사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때 전관들이 로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LH 같은 거대한 공공기관의 독점적 지위가 이권 카르텔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 293개소(25만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다음 주 착수해 9월까지 마무리하고, 전관 유착 등 이권 카르텔을 근절하기 위한 종합 대책도 10월 중 내놓겠다고 3일 밝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