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폭염, 밤엔 모기와 전쟁… “잼버리가 오징어게임 촬영장입니까”

양지혜 기자 2023. 8.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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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잼버리] 각국 학부모·참가자들 잇단 항의
8월 2일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폭염이 계속되면서 더위에 지친 대원들이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김영근 기자

히카르두 이자이아스씨는 포르투갈의 보이스카우트 인솔자다. 그의 트위터는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의 심경을 짐작하게 하는 바로미터다. 평소엔 즐겨 보는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잼버리 출국 직전엔 짐 싸기를 끝낸 가방 사진을 올리며 “드디어 한국으로 간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새만금에 온 뒤 돌변했다. 지난 2일 늪처럼 물기 가득한 야영장에 세워진 텐트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견딜 수 없는 더위, 견딜 수 없는 습도, 견딜 수 없는 모기들! 여기가 ‘오징어 게임’ 촬영장입니까!” 오징어 게임은 절박한 생존 경쟁 스토리로 유명한 한국 드라마다.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열리는 전북 부안 새만금 야영장에 전 세계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한 이후로 잼버리 공식 소셜미디어(#wsj2023)는 성토의 장이 되고 있다. 특히 기특함 반, 걱정 반으로 자녀를 한국에 보냈던 부모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마티아스 판더스미슨(벨기에)씨는 “우리 아이들이 그림자도 없이 불타오르는 더위와 끓는 천막에서 모기 1억 마리와 싸우고 있다”며 “심지어 음식과 물도 부족하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너무 더러워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해 이 지옥을 당장 끝내야 한다”고 항의했다.

3일 전북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에서 한 외국인 참가자가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쓴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다른 외국인 참가자는 탁자에 엎드린 채 손선풍기로 더위를 식혔다(가운데 사진). 식수대에는 머리에 물을 끼얹는 참가자도 있었다(오른쪽 사진). /김영근 기자·연합뉴스

딸 둘을 한국에 보낸 안자 마르툴라시(슬로베니아)씨는 “딸들이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무더위에 시달린다는데, 음식과 물도 제때 제공이 안 된다고 해 쓰러질까 매우 걱정된다”며 “대회 관계자들은 이 난장판을 빨리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펠리페 무뇨즈(스페인)씨도 “딸들이 야영장에 온 뒤 씻기는커녕 밥도 못 먹었다고 전해와 아주 걱정된다”고 썼다.

테레사 제이컵스(호주)씨는 “내 딸이 간 호주 파견단은 위생과 식수가 확보될 때까지 서울에 계속 남아 있겠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게 훨씬 현명한 대처였다”면서도 “아이들이 잼버리에 참가하러 먼 길을 떠난 건데,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오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직접 열악한 현장을 폭로한 대원도 있다. 제이미(웨일스)는 자신의 유튜브에 더럽고 부실한 샤워장의 모습을 공개해 전 세계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3일 전북 부안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뗏목 체험장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이 연일 이어지는 폭염을 피해 휴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 네덜란드 남성은 트위터에 “아이가 병원에서 밤을 보냈다고 한다”며 “물값도 비싸고, 음식도 부족하고, 위생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이에 다른 이들도 “내 딸은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내 지인도 거기에 있다. 누구도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끔찍하다”며 동조했다.

잼버리 공식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홍보 영상에도 성토 댓글이 이어졌다. 한 외국인은 “현재 온열질환 사태와 무관한 자료를 포스팅하는 것을 중단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며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신속하게 조치해달라”고 했다. 다른 외국인은 “한국에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잼버리 주변을 운전하다 비인간적이고 놀라운 상황을 목격했다. 행사를 즉시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에서 한 참가자가 더위에 지쳐 괴로워하는 모습. /김영근 기자

외신도 ‘잼버리 사태’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AP통신은 “당초 이 지역이 더위를 피할 곳이 없어 잼버리 개최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컸다”고 했다. 이어 잼버리 조직위 사무총장이 개영식에서 다수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한 것을 두고 “개영식의 K팝 행사에서 청소년들이 에너지를 분출하느라 체력을 소진해서 그렇다” “잼버리가 다른 곳에서 열렸어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브리핑한 것을 집중 부각했다.

영국 가디언도 이날 “잼버리 개막 첫날 총 환자 수는 약 800명으로, 이미 일일 예상 환자 수의 두 배가 넘어 주한 영사관 직원들이 현장에 급파됐다”며 “영국 외무부 대변인이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현장에 배치된 영사관 직원들이 참가자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은 이번 잼버리 대회에 단일 국가 중 가장 많은 4500여 명의 스카우트 대원을 파견했다. 일본 교도통신도 한국 언론 보도를 인용해 “잼버리 개막식에서 열사병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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