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승진 시험이라는 유물의 퇴장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2023. 8. 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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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롯데그룹이 올해부터 'M Grade(책임)' 승진 자격시험을 없앤다는 소식이 있었다.

'과장시험'으로 불린 이 시험제도는 1983년부터 시행됐는데 다른 대기업들의 시험폐지 흐름에 맞춰 롯데그룹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국 과거 승진시험제도가 합격-승진자를 일정하게 보장함으로써 사용자의 재량권을 오히려 좁히는 것이었다면 최근 직책·직위파괴의 인사제도는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인사재량권을 확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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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변호사

얼마 전 롯데그룹이 올해부터 'M Grade(책임)' 승진 자격시험을 없앤다는 소식이 있었다. '과장시험'으로 불린 이 시험제도는 1983년부터 시행됐는데 다른 대기업들의 시험폐지 흐름에 맞춰 롯데그룹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필자가 대기업 사원이었을 때 경험한 승진시험은 무언가 축제 같은 이벤트였다. 회사에 입사한 지 7~8년 정도 지난 대리들이 과장 승진을 위해 한 곳에 모두 모여 같은 시험을 준비하던 광경은 극적인 요소가 있었다. 별도로 시험준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승진 대상자들은 일과시간이 끝난 이후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그룹 경영이념과 관련된 내용을 외우고 서로 확인해주는 광경을 사무실에서 연출해야 했다. 시험은 지필고사 결과와 별도로 제출된 영어성적을 고려해 합격 여부를 결정했는데 거의 대부분 무난하게 시험을 통과하곤 했다. 회사는 당시만 해도 연공서열 인사제도를 운용했기 때문에 대상자는 대부분 과장으로 승진했고 시험은 약간 불필요한 절차 같은 느낌도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시험승진제도에서도 소수의 탈락자가 생긴다는 점이다. 시험의 특성상 당연한 결과지만 회사라는 친밀하고도 관료적인 조직에서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속한 팀의 옆 팀에도 '만년 대리'인 선배가 존재했다. 선배는 대리 직위에서 과장으로 몇 년 동안 승진하지 못했는데 영어성적이 나오지 않아서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지만 정확한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본부 안의 다른 팀원들이 선배를 '호칭상 과장'으로 부르기 시작한 기억이 난다. 원래대로라면 K대리님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K과장님이라고 직위를 높여 불러줬다. K의 후배들이 과장으로 연이어 승진하는 마당에 동료들은 승진 누락자를 호칭으로나마 배려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회사 조직은 인사제도를 통해 엄격한 직위체계를 운용하지만 이에 적응하지 못한 탈락자를 차마 그대로 두지 못한 당시 회사는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 회사는 직위와 직책을 단순화함으로써 구성원들에게 배분된 자원 자체를 없애버렸다. 과거 본부장-팀장-파트장-팀원으로 나뉘었던 직책은 프로젝트리더(PL)-프로젝트매니저(PM)로 단순화했고 부장-차장-과장-대리-주임-사원으로 세분화해 운용된 직위는 아예 임원(상무 이상)과 사원으로 파격적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회사라는 관료조직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 사용자는 한정된 자원(승진 직위나 직책)을 우수사원에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중간관리자 승진시험과 임원승진 평가 등을 통해 그 혜택을 배분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직위와 직책을 단순화함으로써 그 자원 자체를 소거해버린 것이다.

결국 과거 승진시험제도가 합격-승진자를 일정하게 보장함으로써 사용자의 재량권을 오히려 좁히는 것이었다면 최근 직책·직위파괴의 인사제도는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인사재량권을 확대할 수 있다.

대신 근로자에 대한 선별적 승진 인센티브는 이제 연봉과 성과급의 차등지급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매년 인사고과와 함께 승진을 앞두고 3~5년에 걸쳐 이뤄진 인사평가가 이제는 분기와 반기 등으로 더 세분화해 구체적인 실적을 대상으로 평가함으로써 직책 단순화는 인사평가의 고도화와 연계돼 운용된다.

승진과 연봉(성과급) 인상은 근로자가 회사로부터 받는 인센티브라는 점에서 같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승진은 징계 등으로 인해 직위의 반납이나 강등이 극히 예외적이지만 연봉(특히 승과급)의 경우 사용자가 언제든 그 혜택을 취소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승진처분이라는 사용자 고유권한에 속하는 인사권 행사가 사용자의 재량사항에 속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판단이 최근 인사제도의 변화로 인해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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