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교사에 “나 카이스트 나왔는데 당신 어디까지 배웠냐"···학부모 막말은 어디까지

김태원 기자 2023. 8. 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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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학부모 “그러니까 녹음기 붙여야 한다···선생님 계속 이러시면 위험"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20대 교사가 사망한 뒤 교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과거 한 학부모가 임신 중인 공립유치원 교사에게 폭언을 퍼부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의 한 공립유치원 교사 A씨는 자신이 지도했던 유치원생 어머니 B씨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렸다며 경기일보에 통화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녹음 내용에 따르면 학부모 B씨는 본인의 아이를 다른 반으로 가라고 했냐며 A교사에게 물었다. A교사는 아니라고 답했지만 B씨는 “아이가 집에 와서 자지러지게 우는데 정말 아니냐. 우리 아이 완전 거짓말쟁이 되는 거냐”며 되물었다.

B씨는 또 상황 파악을 위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겠다는 말을 반복한다. A교사가 돌려보라고 답하자 "내 아이가 우선이지 사실은. 내가 선생님 인권 보호해주거나 교사권 보호해주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가 이렇게 당한 게 많은데"라며 "그러니까 녹음기 붙여야 된다니까. 누구 말이 사실인지 녹음기를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통화를 마치고 잠시 뒤 B씨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도 B씨는 격앙된 듯 "어디까지 발뺌하시고 어디까지 끌어내시고 남의 명예까지 실추시키면서 뭐 하시는 거예요. 배운 사람한테?"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당신 어디까지 배웠어요, 지금? (내가) KAIST(카이스트) 경영대학에 나와 MBA(경영학석사)까지 했다. 카이스트 나온 학부모들이 문제아냐”고 다그쳤다. A교사가 "그런 적 없다"고 하자 "선생님 계속 이렇게 하시면 위험하다. 어느 정도껏 해야지"라며 “무슨 권력에 피해받으셨어요?”라고 반문했다.

2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린 교육활동 보호 대책을 촉구하는 제주지역 교육단체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기자회견문 발표 전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의 아이 발표 사진만 굳이 요청···의무 아닌데 문자로 안 보냈다고 ‘타박’

이 외에도 학부모 B씨는 자신의 아이가 발표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A교사에게 요구했다. 이에 A교사는 학교 공지시스템 애플리케이션(앱) 'e알리미'를 통해 B씨에게만 사진을 전송해줬다. 앞서 B씨가 유치원 측에 개인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말라고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원래 모든 아이들의 개별 발표 장면을 찍어서 한 명씩 보내주는 게 아니었음에도 B씨가 요청을 해서 굳이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B씨는 사진이 전체공개로 보내졌다고 착각해 A교사에게 또 전화를 걸어 타박했다. B씨는 “너무 빡빡한 사회가 아니라면 (사진 보내주는) 융통성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서울 가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라며 “그냥 개인 폰으로 전송해 주셔도 되는데 이런 걸 자꾸 공론화하고 그러지?”라고 나무랐다.

‘어머니에게만 보내드렸다’는 A씨의 말에 B씨는 자신의 오해였음을 알았을 텐데도 “선생님 지금 임신 몇 개월이죠”라며 “우리 아이도 그 어떤 아이도 소중하고 좋은 존재니까, 선생님이 임신하셨더라도 좀 융통성 있게 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

B씨는 또 체험학습과 관련해 자신이 항의한 사안에 대해 A교사가 "문제가 있으면 유치원에 정식으로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유치원에 와서 상담하라고 말하는 게 선생님 굉장히 뻔뻔하신 것”이라고 분노를 드러냈다. 결국 참지 못한 A교사가 “더 이상 언쟁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먼저 끊었다.

지난달 27일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문에 서이초등학교 담당교사 A씨를 추모하는 검은 리본이 달려있다. 연합뉴스
‘학부모에 개인 전화번호 공개’ 유치원서 독려 분위기···"서이초 선생님 심정 공감"

A교사는 “도움을 청해도 교원단체에서 실질적 규정, 제도적 방법이 없으니 도움이 된 건 전혀 없다”며 “개인번호를 비공개하라는 공문이 내려오기도 했지만 유치원에서 혼자 번호 공개를 안 하면 저만 타깃이 된다”고 경기일보에 전했다.

또 "관리자들도 똑같다"며 "'선생님들이 아이들 관리하려면 중간 중간 문자도 보내주고 하려면 개인번호를 공개하는 게 낫지 않겠냐'면서 오히려 공개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학부모가)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하는 행동들을 갖고 그대로 초등학교로 가서 똑같이 한다. 그래서 서이초 선생님처럼 그런 일이 일어난다. 저도 그랬다”라며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제 아이와 가족이 없었으면 유서에 그 학부모 이름 써놓고 같은 생각했을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A교사는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도내 다른 지역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교사는 "(사람들이) 고소를 하자고 해도 공개돼서 낙인이 찍힐 아이와 난처해질 유치원 입장 때문에 고소를 못 했다"라며 "너무 후회스럽다"라고 억울해 했다.

한편 교육부는 학부모 민원 응대 시스템 개편안을 담은 교권 보호 종합대책을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초중고 교사뿐 아니라 특수교사와 유치원 교사에 대한 교육 활동 보호 매뉴얼도 함께 내놓을 방침이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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