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하는 기자] ‘젖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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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살갗이 스치고 조금씩 식어가는 귀퉁이가 만져지고 아무 대답 없이 늘 잔잔한 얼굴로 나를 걸어두는 당신 허공에서 펄럭이는 기분을 드문드문 새들이 읽어준다 높으면 높을수록 당신에게 깊게 파고들어 갈 수 있겠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높이에서 차가운 마음에 발목을 걸고 세상을 뒤집는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당신을 향한 내 떨림을 올려본다 원한다면 더 올라갈 수 있어 언제라도 짜릿하게 뛰어내릴 수 있으니까 젖은 머리카락은 말려주지 않아도 돼 - 성은주, 다이빙, 『창』, 2022, 시인의일요일 다이빙 해 본 사람은 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할 정도로 사랑의 높이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되지만, 시인은 "어둠 속에서" 스친 "살갗"과 "식어가는 귀퉁이", "늘 잔잔한 얼굴"에서 이별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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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살갗이 스치고
조금씩 식어가는 귀퉁이가 만져지고
아무 대답 없이 늘 잔잔한 얼굴로
나를 걸어두는 당신
허공에서 펄럭이는 기분을 드문드문 새들이 읽어준다
높으면 높을수록 당신에게 깊게 파고들어 갈 수 있겠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높이에서
차가운 마음에 발목을 걸고
세상을 뒤집는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당신을 향한 내 떨림을 올려본다
원한다면 더 올라갈 수 있어
언제라도 짜릿하게 뛰어내릴 수 있으니까
젖은 머리카락은 말려주지 않아도 돼
- 성은주, 「다이빙」, 『창』, 2022, 시인의일요일
다이빙 해 본 사람은 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푸른 수면 아래로 뛰어내릴 때의 두려움을. 종착지가 없는 출발은 늘 위태롭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할 정도로 사랑의 높이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되지만, 시인은 “어둠 속에서” 스친 “살갗”과 “식어가는 귀퉁이”, “늘 잔잔한 얼굴”에서 이별을 직감한다. 또한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에게 깊게 파고들어” 가길 원하며 더 높이 오르려 한다.
하지만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높이”에 다다른 시인은 기정사실화 된 이별에 정면으로 맞닥트린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호기롭게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랑. 그리고 “언제라도 짜릿하게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
그렇다면 당신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 대답 없이 늘 잔잔한 얼굴”로 대한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 또 식어버린 “차가운 마음”에 모든 걸 건 상대를 애써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도 묻고 싶다. 가까이 있을수록 소중함을 모른다고 했던가. 잊지도, 잃지도 말자고 다짐하면서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이빙대’에 올라가야만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일상과 불편한 뉴스가 매일 같이 들려오는 요즘. 어쩌면 당신은 다이빙대에 올라 “세상을 뒤집는다”는 다짐조차 버거울 수 있다. 용기내 다이빙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자. 여기저기 낙하하는 ‘검푸른 그림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바짝 메말라갈 때야 문득 떠오르는 “젖은 머리카락”들. 오늘은 오랜만에 “아무 대답없이” 흩날려보낸 인연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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