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63. 아름다운 한 무명화가 이야기
시대·역사·문화마다 다른 결혼관
수많은 여인 만난 천재 화가 피카소
아내 사랑 각별한 무명 화가 마르탱
가난해도 사랑했던 추억 작품 투영
“예술 이전에 예술가의 삶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 눈길
시대와 역사가 다르고 삶을 이어온 가치관과 문화가 달라서일까? 서양의 근현대미술사를 읽다 보면 고개를 가로젓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성에 대한 편력과 결혼관이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라는 ‘백년해로론’과 한번 인연을 맺으면 죽을 때에야 헤어진다는 기러기나 원앙을 높이 평가해온 우리네 정서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쓴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 대표적 미술인이 지난달에 연재했던 20세기의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이다. ‘일이 곧 휴식’이라면서 마치 불도저처럼, 로마의 철갑 기병처럼 오만과 패기로 현대미술사를 장식했던 화가. 워낙 살아생전에도 작품 자체만으로도 유명했고 여성 편력의 경력 또한 화려했기 때문에 타계한 지 50년이 넘은 지금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스물네 살이던 1905년 첫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시작으로 마르셀 옴베르(에바), 올가 코흘로바, 마리 테레즈 발터, 도라 마르, 프랑스와즈 질로, 그리고 일흔세 살 때 마지막으로 자클린 로크와 만난 이후 19년을 함께 살았다. 공식적인 관계가 이렇지 잠깐씩 관계를 맺은 여인들은 셀 수도 없는데, “나의 청색시대는 카사헤마스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친했던 그 친구의 애인 제르멘느와도 잠자리를 같이 했을 정도였다.
언뜻 생각나는 또 한 사람은 인간의 실존을 응축한, 가늘고 긴 인체 형상으로 유명한 알베르토 자코메티이다. 경매가가 1억 달러를 웃도는 작품이 다수 있는 조각가로서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포인팅 맨(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이란 작품이 1535억 원에 팔렸다. 1956년, 한 일본인 교수가 그를 찾아와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그 일본인이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부인 아네트에게 반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자코메티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생각으로 일부러 둘만 아틀리에에 남기고 자리를 떴다. 혐오는커녕 그는 연애를 부추겼고 그들만 있을 기회를 많이 주었다. 일본인 교수가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가야 할 때가 오자 자코메티는 몹시 슬퍼하며 꼭 돌아오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돌아왔고, 이 삼자 동거는 몇 달 더 이어졌다.
“예술이란 예술가의 삶에서 작품을 떼어내어 그 자체로만 평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인생을 산 예술가라 해도 그가 창작한 작품이 시시하면 높이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게 아닐까. “예술 이전에 삶이 있다”라고 하지 않던가. 예술작품의 배후에서 예술가의 인생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물론 독창적인 창조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일곱 명의 여인을 갈아치운 피카소의 본심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일까? 작품도 중요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예술가에게 더 관심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앙리 마르탱이라는 프랑스 화가의 삶을 소개하고 싶다.
마르탱은 오로지 자신이 처음 사랑했던 여인 마리와 50년을 넘게 살았다. 마르탱이 좀 유명해지면 좋으련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서 부부는 작은 방에서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았다. 마르탱은 재능의 유무를 떠나 피카소처럼 능청스럽게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설득시키면서 인지도를 높이지도 못했고, 그러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림만 그리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가난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하지만 마리는 마르탱을 너무나 사랑했고 끝까지 사랑했다. 그의 곁이라면 알로에즙도 꿀처럼 달았다. 훗날 마르탱은 파리 시청사의 장식화도 그렸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으나 대단한 명성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세상은 야속한 것! 마리는 마르탱보다 먼저 세상을 등졌다. 당연히 마르탱은 한동안 붓을 들지 못했고 슬픔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마르탱의 그림들은 모두 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했던 마리와의 추억들을 채집한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들은 작은 터치가 모여 전체를 이루고 있는데 점묘 하나하나에서, 색채에서 착한 아내 마리를 향한 초승달 같은 애틋함과 저녁 종소리 같은 여운을 깊게 느낄 수 있다. 앙리 마르탱은 비록 미술사에 혁신의 큰 획을 긋지는 못했지만, 이 한마디의 말처럼은 산 듯하다.
“……돌체(달콤해)!”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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