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집단폭행에 숨진 30대 가장…가해자는 항소심서 감형 [그해 오늘]
심정지 상태 피해자, 병원 이송…다음 날 숨져
고교생 2명 폭행치사·2명 공동상해 혐의로 기소
법정서 피해자 사망예측 가능성 두고 공방 오가
주범 등 2명 항소심서 모두 감형, 5000만원 공탁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21년 8월 4일 오후 10시 44분께 경기 의정부의 한 번화가에서 30대 남성 A씨와 고등학생들 간 다툼이 벌어졌다. 싸움은 고등학생들의 집단 폭행으로 이어졌고 의식을 잃은 A씨는 같은 날 오후 11시 11분께 심정지 상태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옮겨졌다. 그러나 A씨는 병원 이송 13시간여 만인 이튿날 오후 12시 47분께 숨졌다. 사인은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었다.
이후 자신을 A씨의 선배라고 칭한 누리꾼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고등학생 일행이 어린 딸과 아들이 있는 가장을 폭행해 사망하게 했다’는 글을 올리며 사건에 대한 내용이 온·오프라인에 퍼졌다.
현장 조사를 진행한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했던 2명 외 1명을 추가 입건했고 가담 정도가 중하다고 판단한 B군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정확한 사망 원인과 그 사망에 피의자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B군 등이 A씨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경찰은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되는 1명을 추가 입건했고 사건 발생 약 두 달 뒤 B군을 포함한 4명을 폭행치사 등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B·C군 등 2명은 폭행치사 혐의로, D·E군 등 2명은 폭력행위 처벌법상 공동상해로 재판에 넘겨졌고 2022년 6월 17일 의정부지법에서 첫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A씨의 사인인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은 B군 등의 직접 폭행보다는 A씨가 쓰러지며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발생했다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또 A씨가 B군을 먼저 때린 점 등을 언급하며 “피고인들이 사망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소속 부검의는 “사망의 본질적 원인은 충격의 강도가 아니라 충격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기록과 CCTV 영상 분석, 부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피해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행위가 머리 손상에 따른 사망의 주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며 “A씨는 (B군 등으로부터) 맞고 나서 정상적 자세와 행동을 취하지 못한 채 목이 꺾인 상태로 1분 이내에 쓰러졌는데 이는 뇌손상이며 사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같은 해 8월 23일 열린 두 번째 재판에서는 A씨의 아버지가 증인으로 출석해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그는 “아들이 너무 맞으니 ‘너희 하지마. 그만해‘라고 외쳤다고 한다. 가해자들은 충분히 폭행을 멈출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아랑곳 않고 폭행은 이어졌고 결국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 명백한 살인“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피고인 측 변호사는 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며 피고인들에 대해 살인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임을 알고도 피고인들은 피해자를 구타해 얼굴 등 주요 부위를 가격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B·C군에게 각각 징역 9년과 장기 9년, 단기 5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공동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D·E군에게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 징역 1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주범 1심 징역 4년6월→2심 징역 3년6월
1심 재판부는 같은 해 12월 20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B군에게 징역 4년 6개월, C군에게 장기 2년 6개월, 단기 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소년법상 19세 미만인 미성년 피고인에게는 장기와 단기로 형기의 상한과 하한을 둔 부정기형을 선고할 수 있다. 단기형을 채우면 교정 당국의 평가를 받고 조기에 출소할 수도 있다. 재판부는 C·D군에게는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D군은 이 사건 외 특수절도와 무면허 운전 등 범행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공동으로 폭행해 상해를 가했고 피해자가 사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중대 범죄를 일으켰다“면서도 “CCTV를 보면 피해자가 먼저 B군을 때림으로써 사건이 시작된 점, 나머지 피고인들은 B군을 돕기 위해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주범 B군에 대해 “피해자와 싸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때렸고 피고인의 가격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종범죄로 소년보호 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다“고 밝혔다. C군에 대해서는 “‘방어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피고인들이 보였던 행위는 방어행위를 넘어선 적극적 가해행위로 보인다”며 “싸움은 방어행위가 아니기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B·C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B군에게 원심보다 낮은 징역 3년 6개월, C군에게는 장기 1년 6개월, 단기 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해 죄책이 중하고 유족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면서도 “피해자가 먼저 피고인을 폭행하며 싸움이 발생했고 이에 가담해 우발적으로 (폭행이) 발생한 것으로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C군이 항소심에서 범행을 인정하고 유족을 위해 1·2심에서 총 5000만원을 공탁한 것도 감형 사유라고 밝혔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 피해자가 나중에 이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난해부터 피해자의 인적 정보를 알지 못해도 형사공탁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편됐지만 피해자의 수령 의사와는 관계 없이 공탁 자체로 감형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사건은 검사와 피고인이 모두 상고하지 않으며 판결이 확정됐다.
이재은 (jaee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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