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상징에서 다시 생존의 도구로… 선글라스의 기원[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지구의 심각한 기후변화로 강한 자외선과 더운 여름이 길어지면서 어느덧 선글라스는 우리의 필수품이 되고 있다. 선글라스는 패션의 상징인 동시에 은밀한 의미로도 사용되어서 1980년대까지도 영화나 만화 같은 매체에서 스파이나 악당들은 예외 없이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했던 기억이 있다. 13세기에 광학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안경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등장한 선글라스, 그 뒤에 숨겨진 수만 년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자.》
북극권에서 먼저 제작된 눈가리개
놀랍게도 이 선글라스는 현재의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알래스카, 캐나다의 북극권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햇빛가리개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 뼈로 만든 선글라스는 그 안쪽에도 숯검댕을 칠해서 빛의 난반사를 막기도 했으니, 바로 눈부신 북극해의 눈밭에서 사냥을 하거나 멀리 볼 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사진 자료를 보면 당시 에스키모와 북반구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상아제 선글라스는 지금 보아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는데, 북극권에서 수천 년간 사용하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빙하기 때부터 눈 보호 위해 사용
구석기시대에 눈을 보호하는 도구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석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하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매일 수십 개의 돌을 깨면서 필요한 석기를 만들었다. 돌을 수천 번 휘둘러 깨는 과정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빠르게 튀는 석기 조각에 눈을 다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고고학자가 구석기를 제작하는 실험을 할 때면 반드시 보안경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를 보면 짐승의 마스크 같은 것을 쓴 것이 종종 보이니 아마 지금은 잘 남아 있지 않은 가죽 같은 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추운 빙하기에 적응하면서 신체적인 변화도 이어졌다. 빙하기를 지나면서 사피엔스는 햇빛을 막기 위해 윗눈꺼풀이 두꺼워져서 밑으로 처지는 듯하게 되었다. 전문용어로는 에피칸투스 또는 몽골주름이라고도 한다. 이 에피칸투스가 몽골인들에게 많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몽골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눈이 찢어진 듯 표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종에 관계없이 추운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많다. 이는 인간이 빙하기를 지나 생존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축복과 부활 상징한 종교적 의미도
가까운 일본에서는 신석기시대인 조몬문화에서 선글라스를 낀 토우(진흙으로 만든 인형)가 종종 발견된다. 특히 일본의 국보로도 지정된 도호쿠 지역에서 발견된 조몬토기는 여성의 체형이고 얼굴에는 커다랗게 선글라스(또는 고글)를 썼다. 그 형태가 특이해서 우주인을 연상시키지만,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모시는 신의 형상이라고 추정한다. 눈에서 나오는 빛을 신성시하고 그를 감추거나 장식하는 풍습은 중국 쓰촨 분지에서 3000년 전에 번성한 청동기시대 문화인 산싱투이에서 특히 많이 보인다. 여기에서는 눈에서 나오는 안광을 강조하거나 마스크 같은 것으로 눈을 장식한 청동 신상이 많이 발견되었다. 실제 박물관에 전시된 이 신상을 직접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찬란함으로 눈빛이 현현하다는 느낌을 준다.
선글라스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저승에서의 복을 의미하기도 했다. 유라시아 일대의 유목민들은 죽은 사람의 눈 위에 황금이나 은으로 만든 선글라스를 만들어 덮어주기도 했다. 북극해의 무덤에서 발견된 선글라스도 나비처럼 생긴 부적과 함께 발견되었으니 무덤에 묻힌 선글라스는 저승에서 길을 잃지 않고 똑바로 천당으로 가라는 의미였다.
지구온난화 시대, 다시 필수품으로
추위를 막고 신령한 힘을 상징하는 선글라스가 패션의 도구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비행기의 발달이 원인이었다. 파일럿은 강한 자외선과 햇빛을 막기 위하여 착색을 한 안경이 필요했고, 모든 사람의 선망을 받으며 선글라스도 널리 퍼졌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 배우들이 자주 쓰고,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며 선글라스는 패션의 도구가 되었다. 1937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2000만 개의 선글라스가 팔릴 정도로 풍요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사회에서 선글라스는 패션에서 다시 과거와 같은 생존의 도구로 바뀌는 느낌이다. 급격한 기후의 온난화와 자외선의 증가로 우리에게 선글라스는 멋을 넘어서 생존의 필수 아이템이 되고 있다. 또한 사회가 각박해지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어느덧 서로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선글라스로 자신을 감추고 스스로 고립하려는 용도로 사용하는 예가 많아지는 것같다. 하루하루 참기 어려운 더위가 지속되는 요즘이다. 선글라스가 다시 자신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도구로 계속 사용되길 바란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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