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과 비긴 지소연"한국인은 투혼!이렇게 끝내고싶지 않았다"[女월드컵 현장 인터뷰]

전영지 2023. 8. 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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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하는 지소연<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브리즈번(호주)=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모든 분들이 우리가 독일과 비길 거라곤 생각지 못하셨을 것같다. 2연패 후 4년간의 준비가 무의미해졌지만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 대표팀은 3일 오후 7시(한국시각) 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국제축구연맹(FIFA) 2023 호주-뉴질랜드여자월드컵 '세계 2위'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1대1로 비겼다. 기적이 필요한 경기였다. 1차전 콜롬비아에 0대2로 패하고, 2차전 모로코에 0대1로 패하며 16강 꿈이 멀어졌다. 우승후보 독일이 콜롬비아에 패하는 이변 속에 기적의 '경우의 수'가 등장했다. 콜롬비아가 최종전에서 모로코를 잡고, 한국이 독일에 5골 차로 승리하면 극적인 16강행이 가능하단 것. '1승1패' 조2위의 독일 역시 16강행을 위해 한국전에 사활을 걸 것이 뻔했다. 다들 '희망고문'이라고 했지만 벨 감독도 선수들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황금세대도, 차세대도, 한국 여자축구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치기로 했다. 마지막 최강 독일전에선 100%의 한국 여자축구를 보여주자고 결의했다. 전반 2분 지소연의 스루패스에 이은 케이시 페어의 슈팅이 골대를 강타했다. 골의 전조. 그리고 전반 6분 만에 이영주의 킬패스에 이은 조소현의 골이 터졌다. 전반 42분 알렉산드라 포프에게 헤더를 내주며 1대1로 비겼지만, 한국은 첫 골, 첫 승점을 함께 가져왔다. 우승후보 독일은 뜻밖에 한국과 비기며 2승을 기록한 콜롬비아, 모로코에 밀려 조 3위로 떨어졌고, 여자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로 16강 탈락의 치욕을 맛봤다.

지소연 볼다툼<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믹스트존을 향하는 지소연을 향해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 취재진들이 몰렸다. 영어,일어, 한국어 3개국어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소연은 믹스트존을 나올 때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멍투성이 다리로 "괜찮아요"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소연은 첼시 시절 동료인 골키퍼 안 카트린 베르거와 교환한 유니폼을 입은 채 인터뷰에 응했다. 첼시 절친 멜라니 뢰폴츠와도 인사를 나눴다. 대한민국과 독일이 1대1로 비기면서 독일이 여자월드컵 9회 출전 역사상 최초로 16강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지소연은 "제친구들이 독일팀에 있는데… 한국과 독일, 우리 둘이 같이 올라갔어야 하는데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떨어져서 너무 아쉬워 하더라. 정말 축구는 모르는 것 같다. 모든 분들이 우리가 독일과 비길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

마침 지소연이 뒤로 지나가던 케이시 페어를 향해 영어로 "너, 그거 넣었어야 해(You should have scored that goal)"이라고 외쳤다. 지소연이 찔러준 스루패스가 아깝게 골대 아래를 맞춘 장면이다. 전반 6분 조소현 선제골의 전조였다. "전반 2분 케이시에게 찬스 난 게 들어갔더라면 더 좋은 분위기 속에 더 몰아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 했다. "독일을 상대로 모로코, 콜롬비아보다 골대에 더 가깝게 갔다는거, 진작에 이렇게 경기를 했더라면"이라며 거듭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도 자랑스러운 건 우리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것을 잊지 않은 것, 마지막까지 응원해주신 분들, 경기장에 오신 분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코칭스태프들을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많이 밀리긴 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돌아봤다.

이날 1대1 무승부로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 첫 골과 첫 승점을 함께 땄다. 지소연은 "다행인건 2019년보다는 성적이 좋았다.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경험이 나에겐 물론 어린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지소연은 이날 중앙, 측면을 쉴새없이 오가며 달리고 또 달렸다. 패스를 찔러주고 측면에서 돌파하고 상대의 패스줄기를 끊어내며 102분에 달하는 경기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지소연은 "많이 안뛸 수가 없었다. 소리치고 태클해주고, 계속 뛰고, 언니로서 베테랑으로서 책임감이 많이 느꼈다. 마지막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월드컵에서 모든 걸 다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앞선 두 경기가 너무 아쉽다. 오늘 같이 자신 있게 조금 더 보여줬으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월드컵에서 좋지 않았다고 해도 우린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시안게임도 있고, 아시안컵도 있다"며 다시 눈을 빛냈다.

지소연<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드리블하는 지소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위기에서 기회를 만든 힘에 대해, 2연패 끝 강호 독일을 상대로 승점을 따낸 비결에 대해 그녀는 "원래 한국인들, 투혼 있잖아요"라며 생긋 웃었다. "앞선 두 경기에서 못보여드려서 아쉽다. 마음이 후련하지는 않다. 앞 두 경기 못했기에 이 경기 하나로 덮어지는 건 아니다. 뭐가 부족한지 돌아가서 분석해봐야 하고, 아시안게임, 아시안컵도 있다"며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봤다.

독일전 무승부의 의미를 묻자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앞선 두 경기를 하면서 4년간의 준비가 무의미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마무리는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힘을 냈다"고 했다. 작은 보상이라도 됐을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미래를 바라봤다. "어린 선수들이 더 보고 더 느끼고 좋은 경험이 됐으면 좋겠다."

황금세대들이 오매불망 염원해온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찬 미래, 이날 황금세대와 차세대가 어우러져 독일을 잡은 이 경기를 통해 그녀는 희망을 봤을까? "(천)가람, 케이시 등 어린 선수지만 많이 뛰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줬다.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는 이제 케이시, (천)가람, (추)효주, (장)슬기, (최)유리가 다함께 이끌어 가야 한다. 자랑스럽고,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한국 여자축구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처음으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지니까요."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믹스트존을 총총 떠났다. 4년의 기다림, 16강 기적은 없었지만 희망을 쐈다.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오랜 눈물을 닦아준 독일전이었다.
브리즈번(호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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