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밥 사주자 “교사가 거지 취급”...”탕수육 찍먹하는 애한테 부먹” 항의도

최은경 기자 2023. 8. 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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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총, 교권 침해 사례 1만여 건 공개

서울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반깁스를 했다. 학부모는 “교사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했다”며 “매일 집 앞까지 차로 데리러 오라”고 요구했다. 교사가 거절하자 “교문 앞까지 매일 마중이라도 나오라”고 했다.

전북 지역 초등학교에선 학생이 자해해 얼굴에 멍이 들자 학부모가 “교사가 아동 학대를 했다”며 신고했다. 교사에게 무혐의 처분이 나오자 이 학부모는 “교사가 학생을 화나게 해서 자해한 것”이라고 우기며 재차 신고했다.

정성국 한국교총 회장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교육권 보장 현장 요구 전달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3일 공개한 학부모와 학생의 교권 침해 사례 중 일부다. 교총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2일까지 설문 조사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교원들이 제보한 교권 침해 사례가 총 1만1628건이고, 이 중 71.8%(8344건)가 학부모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학생에 의한 침해는 28.2%(3284건)였다.

학부모의 아동 학대 신고·협박 등 악성 민원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57.8%(6720건)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학부모와 학생의 폭언·욕설 19.8%(2304건), 업무·수업 방해 14.9%(1731건), 폭행 6.3%(733건), 성희롱·성추행 1.2%(140건) 순이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총 121쪽에 달하는 ‘교권 침해 사례 모음집’에는 교실 안팎에서 교사들이 겪어야 했던 피해가 구체적으로 담겼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체험 학습 중 간식을 사 먹을 돈이 없다는 학생에게 밥을 사줬다가 봉변을 당했다. “교사가 아이를 거지 취급했다”며 학부모가 사과와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충북의 한 고교에서는 학부모가 교실에 들이닥쳐 “내가 조폭이다. 칼 맞고 싶나”라고 교사를 협박했다. 상담 시간에 “이(아이 이름) 생각하면 가입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신용카드 영업을 한 학부모도 있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학부모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며 교사 전화번호를 알려줘 “학부모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계속 당신에게 연락하겠다”는 협박을 받아야 했다. “우리 아이는 탕수육을 ‘찍먹’ 하는데 ‘부먹’으로 준다” “우리 애 담임 맡을 동안은 결혼하지 말아 달라” 등 황당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거나 폭언·욕설을 하는 사례는 1500건이 넘었다. 한 신규 교사는 계단에서 뛰는 학생을 지도하다가 학생에게 뺨을 맞고 계단에서 굴러 의식을 잃었다. 당시 피해 교사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와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라고 아이를 교사로 만든 게 아니다”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사 성폭력 사례도 140건 신고됐다. 인터넷에 올린 학생들의 수영 활동 사진을 보고 “선생님이 수영복 입은 모습이 상상이 된다”고 댓글을 단 학부모도 있었다. 방과 후 교사 자리에서 음란 행위를 한 초등학생, “선생님을 임신시키고 싶다” 등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중학생들의 사례도 접수됐다.

정성국 교총 회장은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 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할 경우 교실 퇴장 등 실질적 방안을 담은 교육부 고시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학생이 교권 침해로 처분을 받으면 생활기록부에 기록해야 한다”며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에게 고발이나 과태료 부과 같은 엄중한 조치를 하도록 교원지위법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교육부가 공개한 교권 관련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교원 2만2084명 중 97.7%가 “아동 학대 신고 등으로 학교 교육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교원들은 ‘학생·학부모 처벌 미흡’(25.0%),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23.8%) 등을 교권 침해가 늘어난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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