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니제르 국민이 쿠데타 지지하고 "푸틴 만세" 외친 이유
美, 쿠데타 되돌리기 쉽지 않다 판단
우라늄 자원수출은 부패한 권력층 몫
국민들, 프랑스가 자원착취한다 생각
반면 러시아 수탈역사 없고 식량지원
쿠데타 이후 니제르에서 서방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反)프랑스 시위와 함께 러시아 국기가 거리에 보이고 "푸틴 만세"라는 외침도 나온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흔히 발생하는 군사정변이지만 여러가지 글로벌 쟁점들이 한꺼번에 교차되면서 이번 니제르 쿠데타는 국제사회의 핫이슈가 됐다.
◇쿠데타 수장 "외세에 굴복안해"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대통령 경호실장이 이끄는 니제르 군부 세력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쿠데타를 일으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축출했다. 그러자 서아프리카 15개 국가 연합체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제재와 함께 군사 동원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티아니 경호실장은 꿈쩍도 않고 있다. 그는 2일 TV 연설을 통해 "그 어디에서 오더라도 그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니제르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한 이날 연설에서 "니제르 내정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니제르의 서쪽 접경국인 말리와 남쪽의 부르키나파소까지 외국의 니제르 군사 개입을 자국에 대한 전쟁 선포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역내 긴장이 커지고 있다. 기니 정부도 "군사 개입을 포함해 ECOWAS가 권고한 제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니제르에 대한 외국의 군사 개입에 대항하고 나선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기니 등은 모두 최근 3년 이내에 쿠데타 등으로 군부 정권이 들어선 국가다. 특히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는 러시아와 가까운 나라다.
미국은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니제르의 상황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미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통신에 "미국의 목표는 군부 장악을 되돌리려는 ECOWAS의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상황이 삼상치 않자 미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의 자국민 대피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프랑스는 부지런히 자국민들을 비행기로 실어나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 있는 자국 대사관에서 비상인력이 아닌 직원과 가족을 출국하도록 하는 부분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친(親)서방 정권, 왜 전복됐나
니제르는 서아프리카의 내륙국이다. 국토의 4분의 3이 사하라 사막이다. 15~16세기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무역을 통해 번성했으나 1960년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고, 친서방 정권이 계속 득세했다. 하지만 친서방 정권이 반드시 현지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은 아니다.
바줌 대통령은 지난 2020년 12월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초로 평화적·민주적 절차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당시 그는 코로나19 대처 실패, 경제 실정, 부정·부패 등을 집중 부각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바줌 자신도 대통령이 되자 부정·부패 스캔들에 휩싸였다. 지난 5월 니제르의 한 비정부기구(NGO)는 지난 1년 동안 약 1억 달러가 니제르 재무부에서 불법적으로 유출되었다고 보고했다.
니제르는 세계 최빈국이다. 인구의 5분의 1인 440만명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흉작과 이웃 국가에서 유입되는 난민으로 인해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 이렇게 민생고가 극심한 나라이지만 우라늄, 원유, 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우라늄 생산국이다.
그러나 자원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 대부분은 권력층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럼에도 서방의 지원은 임계점에 달한 정권의 수명을 연장시켜 왔다.
쿠데타 이후 느닷없이 러시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수도 니아메에선 군부세력을 지지하는 시위대 수천명이 행진을 벌였다. 일부 시위대의 손엔 러시아 국기가 들려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러시아 만세", "푸틴 만세"를 외쳤다.
반면 시위대는 프랑스 대사관으로 몰려가 "프랑스 타도"를 외치면서 대사관 현판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고 불도 질렀다. 보안군이 최루탄을 쏘고 나서야 시위대의 공격은 끝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은 영국 BBC 방송에 "프랑스는 우라늄, 석유, 금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부를 착취했다"면서 "니제르 국민들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는 것은 프랑스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미·프랑스는 '타격', 러시아는 '급부상'
이번 니제르 쿠데타로 서방의 서아프리카 정책은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2021년 집권해 서방 친화적 정책을 편 바줌 대통령이 실권하면 충격이 불가피한 것이다.
니제르는 안보가 극도로 불안한 사헬지역(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남쪽 주변)에서 서방의 보루 역할을 해온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과 프랑스는 니제르를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에 맞선 대(對)테러전 거점으로 삼아왔다. 바줌 정권의 협력 덕분이었다.
일각에선 프랑스와 미국이 '테러 박멸'을 내걸고 개입했지만, 개입의 배후에는 광물자원 확보와 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가장 큰 목표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유럽연합(EU) 역시 니제르를 아프리카에서 오는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파트너로 삼아왔다. 앞으로 이런 관계가 끊어질까 우려감이 높다.
게다가 서방은 니제르가 앞으로 친러 국가로 변모할까봐 노심초사다. 지금까지 니제르는 바줌 대통령의 친서방 정책으로 사헬지역의 다른 국가와 달리 러시아와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한 곳이었다. 니제르는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과 계약을 맺지 않았고, 러시아 주둔 병력도 없다.
하지만 이번 군사정변으로 바줌 정권이 붕괴한다면 러시아로 기울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렇게 되면 니제르의 막대한 우라늄이 러시아로 들어갈 수 있고, 바그너그룹 또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가 니제르 상황에 개입할 여지는 충분하다.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니제르 쿠데타를 '서방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라며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질서 유지'에 바그너 용병 투입을 제안했다.
서방 정권에 대한 불신이 쿠데타로 이어지고, 그 결과 새로 등장한 군사 정권이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패턴은 아프리카에서 자주 목격된다. 2021년 쿠데타로 친프랑스 정부가 무너지고 바그너그룹과 계약한 말리가 대표적인 예다. 부르키나파소 군정 역시 자국 주재 프랑스 대사를 추방하고 바그너 용병을 끌어들였다.
이를 보면 니제르가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이렇게 친러 성향이 되는 원인은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친서방 정권의 부패와 불의, 그리고 이로 인한 빈곤 문제가 러시아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다. 친서방 정권에 대한 불만이 러시아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 세력 역시 이전 정권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니제르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암울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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