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혼자 걷다가 넘어져도 모기 물려도 “선생님 탓” 신고

김나연 기자 2023. 8. 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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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총 교권침해 사례 설문조사
하루 만에 1만1628건 쏟아져
절반 이상 학부모 악성민원
“정당한 지도에 면책권 줘야”
교원 보호 등 법 개정 목소리
정성국 회장(가운데)을 비롯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지도부가 3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교육권 보장 현장 요구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경기도 A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체험학습 중 돈이 없다는 학생에게 밥을 사줬다가 학부모에게 항의를 받았다. “아이를 거지 취급했다”는 게 이유였다. 학부모는 교사에게 사과와 함께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요구했다.

서울 B유치원의 한 교사는 “아이가 모기에 물려왔는데, (교사는) 교실에서 뭘 하고 있었냐”는 민원을 들었다. 서울의 C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실에서 걷다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다쳤다. 학생의 부모는 “교사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해서 사고가 났다”며 교사에게 “등굣길에 매일 집 앞까지 차로 데리러 오라”고 했다.

전북의 D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자해해 얼굴에 멍이 들었는데 학부모는 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며 신고했다. 교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학부모는 “교사가 학생을 화나게 해서 자해를 한 것”이라며 다시 신고했다.

한국교원단체총합회(교총)는 3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교육권 보장 현장 요구 전달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만 하루 동안 교권침해 사례로 총 1만1628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학부모의 교권침해(8344건)가 학생(3284건)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았다. 교권침해 유형은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협박 등 악성 민원이 6720건(57.8%)으로 가장 많았다. 폭언·욕설이 2304건(19.8%), 업무 및 수업 방해가 1731건(14.9%)으로 뒤를 이었다. 폭행(733건·6.3%)과 성희롱·성추행(140건·1.2%)도 있었다.

정성국 교총 회장은 “단 24시간 진행한 설문에서 사례가 쇄도하는 것을 보며 현장이 얼마나 처절한 상황인지 놀랐다”면서 “갑작스럽게 던지기식으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 체계화된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총은 우선 가해학생과 피해교사의 즉시 분리조치 근거법을 마련하는 등 관련 법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아동학대 면책권을 조속히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 교권보호위원회가 교사 요청만으로도 열리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학생인권조례 재정비, 교원평가 전면 개선 등도 요구했다. 이대형 경인교대 교수(인천교총 회장)는 “화장실에서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면 선생님들이 피해가는 실정”이라며 “교장의 지도권을 강화하고, 학교가 충분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3일부터 16일까지 교원 2만2084명에게 실시한 교원 인식 조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응답자의 25%는 교육활동 침해가 증가하는 이유로 ‘교육활동 침해 학생·학부모에 대한 엄격한 처벌 미흡’을 꼽았다.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교육활동 보호 관련 법령 및 제도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47.4%로 가장 많았다. 예방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2.2%로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97.7%는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교원의 어려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처벌법 등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4.6%로 가장 많았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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