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협력’으로 미·중 접촉 물꼬 트나…미국,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 동참 의사
한국에 사업 참여 협조 요청
대화 재개 중재자 역할 기대
한·중 경색 속 추진 불투명
미국 정부가 한국 측에 한·중 간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미국도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3일(현지시간) 경향신문에 “한국이 중국과 진행 중인 유해 발굴 협력에 미국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며 “한국 측도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또 “한국, 미국, 중국 간 3자 협력이 성사된다면 먼저 유해 발굴 관련 과학·기술 교류에서 출발해 공동 조사 및 발굴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측은 지난 2월 한국 측에 이 같은 구상을 처음 설명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 전사자 유해 인수식에 참석한 신범철 국방부 차관 등에게 재차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자는 한국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매해 한국전쟁 참전 중국군 유해를 송환해오고 있다는 점을 적극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미·중 유해 발굴 협력 재개를 위해 일종의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미국이 한국을 고리로 한 3자 협력 구상을 제안한 것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중국 인민해방군 측과 2차 세계대전 미군 전사자 등에 대해 진행해 온 유해 발굴 협력 사업이 2019년 이후 코로나19 등으로 장기 교착에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양국 간 군사당국 대화까지 단절된 상태다. 미 당국자는 “중국과 계속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우리의 요청에 전혀 호응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전사자 유해 발굴·송환을 정치·군사적 갈등과는 별개로 인도적 관점에서 우선 현안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중국 내에는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당시 공중작전 도중 격추당한 미군 조종사의 유해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의 유해 송환사업 협력을 통해 양국 간 신뢰를 재구축하고, 이를 계기로 북한과의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사업 재개에 물꼬를 트는 한편 장기적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관여를 이끌어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이 올해 하반기 중국군 유해 송환식을 거행할 경우 중국과의 협력 재개를 위한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한·중관계가 냉랭해져 중국이 한국 정부의 실무 협의 요청에 답하지 않고 있어 유해 송환식 실시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일각에선 2014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도 9년 연속 진행돼 온 유해 송환식이 올해는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안보·군사·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치 중인 중국이 미국의 협력 제안을 수용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 미국, 중국이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사안인 전사자 유해 발굴 협력을 매개로 마주 앉는다면 미·중관계는 물론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북·미 유해 발굴 협력 재개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2018년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미군 유해 송환’ 협력(4항)에 합의했지만, 북한이 그해 7월 미군 유해가 담긴 55개 상자를 미군 측에 인도한 것 외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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