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해병대 순직 사건 경찰에서 회수…사건 축소 시도 의혹
국방부, ‘군기 위반’ 지적하며 사건 회수
해병대 수사단장은 보직 해임
책임자 범위 좁히라는 지시 불응한 듯
지난달 해병대 브리핑도 국방부가 막아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이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 순직 사고의 수사 관할권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해병대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한 자체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려 하자 국방부가 제동을 걸었고 해병대 수사단장은 보직해임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진 것으로 3일 확인됐다. 독립 기관으로서 해병대 수사단의 결론이 유의미하다는 해병대와 책임 소재의 범위를 줄이라는 국방부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군과 경찰 등에 따르면 해병대는 지난 2일 경북경찰청에 자체 조사 결과 자료를 제출했는데 국방부 검찰단은 이것이 ‘군기 위반’이라며 사건을 회수했다. 국방부는 해병대 측에 회수와 관련한 사전 설명을 하지 않았고 해병대 측은 하루 지난 3일 언론 보도를 통해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가 문제 삼은 것은 해병대가 제출한 자료의 내용이다. 해병대는 사건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파악한 사실관계뿐 아니라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과 각각의 혐의 내용을 적시했다. 국방부는 사건의 사실관계만 담으라는 지시를 해병대 측에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해병대 수사단은 엄연한 독립 수사 기관이라는 이유로 여기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국방부 검찰단이 해병대의 ‘군기 위반’을 지적하며 사건을 회수한 것이다.
사건이 회수된 2일 해병대 수사단장은 보직 해임됐다. 보직 해임 권한은 해병대 사령관에 있지만 사실상 상급 기관인 국방부의 지시에 불응한 데 따른 국방부 차원의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 수사단장의 항명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해병대가 혐의자와 혐의 내용까지 경찰에 넘기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서 회수한 해병대 수사단의 자료도 혐의 관련 내용은 삭제하고 다시 경북경찰청에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가 경찰로부터 사건을 회수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해병대는 지난달 31일 자체 조사 결과를 언론에 설명하려고 했는데 브리핑이 예고 한 시간 전에 돌연 취소됐다. 경찰 이첩을 앞둔 상황에서 군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국방부 자체 법리 검토 때문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채 상병 순직이 여론의 관심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방부의 조치는 타당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군이 특정 직위의 인물에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발표하고 그 내용이 보도되면 경찰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군이 경찰에 제공하는 자료 내용 자체가 경찰 수사를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은 브리핑 취소 상황과는 결이 다르다. 이첩 자료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이 국방부도 아닌 해병대의 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과 관계없는 한 경찰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경찰은 군의 초동수사 결과를 기반으로 사건을 조사해 혐의 내용을 가려낸다. 혐의자와 내용이 적시돼있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관할 경찰청인 경상북도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에 제출된 군의 자체 조사 결과가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나’라는 질문에 “해병대의 사건 이첩 단계에서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했기 때문에 자료 내용을 읽어보지 못했다”며 “가정에 기반해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정말 문제 삼은 것은 해병대가 자료에 혐의 내용을 적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혐의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방부는 해병대의 제출 자료에 담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이 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책임 범위를 좁히라는 국방부의 지시에 해병대 수사단이 응하지 않아 사건 회수와 수사단장 보직 해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방부가 해병대를 ‘패싱’하려는 시도는 지난달 31일 해병대 브리핑 취소 상황에서도 확인됐다. 해병대는 사흘 앞선 28일 브리핑 계획을 미리 언론에 공지하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도 보고했는데 31일 오후 2시 브리핑을 앞두고 오전 11시에 국방부로부터 돌연 브리핑 취소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해병대는 오후 1시쯤 브리핑 취소 사실을 언론에 공지할 때도 국방부의 취소 지시 사유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수사를 보강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가 오후 3시쯤 “국방부의 법리 검토 때문”이라고 사유를 정정했다. 브리핑 취소는 이 장관의 지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차 31일 오후 출국해 3일 오전 귀국했다.
31일 오후 해병대 공보실 관계자가 기자실에서 브리핑 취소 사유를 직접 설명할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오히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이 오후 3시30분쯤 기자실에서 국방부 차원의 법리 검토 결과를 설명했다. 3일 오전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도 취재진이 해병대사령부에 사건 관련 질의를 하자 전 대변인은 “그건 제가 답변을 드리겠다”며 “(경찰 이첩과 수사를 거쳐) 필요한 내용들이 확인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해 해병대는 사령관의 지휘 사항이라며 “해병대의 단결을 저해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임의대로 제공하여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습을 방관할 수가 없음”이라고 내부에 전파하는 등 ‘입막음’ 정황도 확인됐다. 이런 해병대의 책임 소재와는 별개로 국방부가 해병대의 사건 처리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도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국방부가 경찰에 해병대의 ‘군기 위반’을 이유로 사건을 회수한 것 자체가 오히려 추후 경찰 수사에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공정한 수사를 위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다시 이첩할 예정이고 다음 주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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