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돌아오는 농촌, 돌아버릴 농촌

기자 2023. 8. 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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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응애, 30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 온 마을 들썩.” 농어촌 지역 언론에는 이런 기사가 대서특필되곤 한다. 면사무소 공무원은 사망신고에는 이력이 났어도 출생신고를 해본 적이 없어 물어물어 업무를 처리했다는 후일담도 붙는다. ‘돌아오는 농촌’이란 구호는 닳아빠진 선거 컨설팅 회사도 밀쳐둘 진부한 구호지만 농촌에선 생존의 외침이다. 도시가 고령화를 고민할 때 ‘초초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농촌에선 인구문제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사람을 끌어오느라 애를 먹는다. 한때는 농촌 총각들 장가를 보낸다며 군수가 비혼 남성들을 외국으로 데려가 단체 맞선을 주선하는 일도 있었으나 이제 그 총각들도 노년이 돼 농촌 혼인건수 자체가 없다시피 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그래서 귀농·귀촌 정책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귀농이 아니라 귀촌이어도 농촌 주민으로 살면서 지역 유지에 기여하므로 귀촌도 환영이다. 실제로 귀촌하러 왔다가 농업에 관심이 생겨 농사를 짓는 사례가 많아 ‘일단 한번 살아보시라니까요!’를 외치는 ‘살아보기 프로젝트’도 지자체마다 열심히 굴리고 있다.

도시의 삶이 지쳐서 농산업의 비전을 점치며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어왔다. 10년 전인 2013년 42만2700명이 농촌으로 돌아왔고, 50만명 정도씩 해마다 농어촌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2022년에는 처음으로 귀농·귀촌 인구가 줄었다. 2022년 귀농·귀촌인 통계 조사를 보면 귀농·귀촌 인구는 43만8012명으로 2021년보다 7만7422명 줄었다. 정부는 고금리로 나라 전체의 주택거래량이 줄고 인구 이동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7만7000여명이면 작은 군 단위 농어촌 두어 곳을 합친 인구이기에 이런 현상을 가벼이 넘길 수는 없다.

일단 농촌에서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는 이유가 크다. 농산물을 팔아 얻은 농업소득이 연 949만원, 그나마 유지하던 1000만원선이 무너졌다. 농약값, 종자값, 기름값, 품값 모두 올라도 농산물값만 종종걸음이다. 여기에 날씨까지 독해져 내다 팔 만한 농산물 수확이 어려워 소득 압박으로 이어진다. 나머지 생활비는 투잡, 스리잡을 뛰어 메우는 현실에서 베테랑 농민도 버티기 힘든 마당에 농지 규모도, 기술도 부족한 귀농인이 버틸 재간이 없다.

현재 귀농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56.4세. 5060세대가 70% 정도로 40대 이하의 귀농·귀촌 인구는 5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결혼이나 출산 가능성이 있는 청년세대의 귀농·귀촌은 많지 않은 데다 가족단위가 아니라 1인 가구의 귀농·귀촌이 79.3%에 달해 인구증가에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 도시에서 누릴 삶은 다 누리다 와서 조금 있으면 노령연금을 탈 나이에 농촌에 들어와 돌봐야 할 대상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선도 있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5060세대는 신중년세대로 농촌에서는 청년세대이자 지역 활성화의 주체이니 활성화될수록 좋은 일이다. 다만 귀농가구주의 성별을 보면 67.1%가 남성이다. 혹자는 <나는 자연인이다>에 꽂힌 남성들이 전원생활을 철없이 꿈꾼 것 아니냐고도 하지만 귀농·귀촌 준비기간은 평균 2년. 욱해서 삶의 자리를 옮기지는 않는다. 결국 농촌은 여성들이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어서다. 의료, 교육, 문화 시설과 같은 인프라도 부족하지만 농촌은 원래 그렇다며 오래도록 손놓았던 성불평등 문제가 여성들의 귀농·귀촌을 막는 주요 요인이다.

농사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은 소득이 보장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가끔 영화도 한 편 볼 수 있으며 성별과 나이로 차별받지 않고 주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는 평등 문화가 자리 잡아야 ‘돌아오는 농촌’이 된다. 이 기본 세 가지가 받쳐주질 않으니 ‘돌아버릴 농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짚어야 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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