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탄핵 기각이 면죄부일까?

기자 2023. 8. 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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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탄핵소추 과정만큼 치열하게 대치되고 있다. 집권여당은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며 야당들을 몰아세운다. 지난번 검찰개혁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의 결과를 놓고 헌재를 폄훼하던 태도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야당들은 헌재 결정에 유감을 토로하면서 책임정치가 상실된 상황에 대한 무기력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사회 일각에선 헌재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재의 결정이 있을 때마다 일희일비하며 찬양론과 무용론을 번갈아 제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민주공화제의 관건인 기본적 인권이나 민주적 자치를 보장하는 데 헌법재판이 기여해 온 바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헌법재판의 긍정적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제어하는 데 필요한 균형 잡힌 이해를 모색하는 일이다.

이번에 헌재는 헌법상 탄핵심판제도가 공무원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정치적 탄핵제’가 아니라 헌법이나 법률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법적 탄핵제’임을 다시 확인했다. 사실 장관에 대한 정치적 통제의 방편으로 탄핵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는 긍정적 의미가 있는 반면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내각 통솔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부작용도 동시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에 탄핵심판권을 부여한 것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인사문제에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원칙적으로 정치권에서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헌법질서 훼손에 해당하는 중대한 위법의 경우에는 수동적 차원에서 인사권의 외적 한계를 설정할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상민 장관이나 이 장관을 계속 신임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탄핵기각으로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대한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면죄부를 받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탄핵의 요건이 한정적이어서 정치적 사유에 따른 탄핵을 허용하지 않는 만큼 사법적 탄핵 기각의 의미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헌재는 단지 이 장관의 직무수행이 사법절차에 따라 파면을 할 만큼 중대한 헌법 및 법률 위반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를 사후적으로 대응하면서 보인 부적절한 말과 미흡한 행동에 비춰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받고 있는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지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여전히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그러한 지위를 위임한 주권자인 국민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총괄조정 책임자가 수행 운전기사를 기다린다고 대통령 주재 긴급상황점검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현황 오도성’ ‘책임 회피성’ 발언을 계속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애당초 주무장관이라는 지위는 개인적 고의나 과실을 넘어 참혹한 결과가 발생한 사실만으로도 기본권 보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과 정부를 대표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해임 건의와 탄핵소추에도 불구하고 이 장관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결정에 대해 앞으로 치러질 선거나 국정운영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헌재는 주어진 수동적 직분상 이 장관을 파면하지 않았을 뿐 그에게 최종적인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이 그런 권한을 가진다. 대통령과 국회의 협치를 전제로 한 공화적 권력구조를 고려할 때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나 탄핵소추를 통해 달성하지 못한 책임추궁을 우회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예컨대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입법적 대응에 대한 정치적 평가 역시 오롯이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덧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목숨들의 원혼을 달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어떻게, 어느 수준까지 다잡을 것인지의 문제에 대한 해결은 이번 탄핵 기각으로 끝난 게 아니다. 탄핵 기각은 오히려 국회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호소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에 의해 애써 무시되고 지체되어온 정치적 책임추궁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민적 노력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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