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힘내서 달립시다
24초. 내가 기억하는 100m 달리기 기록이다. 치타는커녕 기어다니는 악어보다 두 배는 느리다. 운동에는 거의 재능이 없었고, 숨쉬기 운동 외에는 걷기조차 싫어했더랬다. 그랬던 내가 올해 초부터 새벽 달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2㎞를 뛰는 것조차도 헉헉댔지만, 6개월을 꾸준히 뛰면서 이제는 4㎞를 거뜬히 뛸 수 있게 됐다. 이어폰 너머에서 달리기 애플리케이션 속 성우가 지시하는 대로 공원에서 그리고 러닝머신에서 열심히 달린다. 성우는 느리지만 열심히 달리는 나에게 연신 외친다. “정말 대단합니다!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내가 달리는 목적은 건강한 삶이지 마라톤 대회 출전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하프 마라톤에 출전하는 목표를 세워도 좋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해본다. 아직은 초보 러너인 내가 선배 러너들처럼 10㎞를 달리는 날이 온다면 정말 멋진 성취가 될 것이다. 더 잘 달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순간 이어폰 속 성우가 외친다. “절대로 당신을 추월해서 달리는 사람을 보고 무리하게 뛰지 마세요!” 그래. 나는 내 경험과 역량에 맞게 뛰어야 한다. 추월하고 싶다고 해서 아둔한 내 발이 더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인생은 길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노력 하나를 차분히 쌓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고 되뇐다.
요즘은 6개월 된 달리기 운동보다 10년 넘게 해온 생태보전 운동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생태보전 운동의 목적은 인간의 영향에 의한 생물다양성 붕괴를 막고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그러자면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보호구역을 30%까지 늘리고, 강물도 흐르게 해야 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감축해야 한다. 무엇 하나 쉬운 과제가 없지만, 진지한 논의나 실질적인 이행은 더디기만 하고, 가끔은 오히려 역주행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레이스의 시작부터 뒤처진 것은 아닐까.
기나긴 장마에 이어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40도를 웃돌았던 2018년보다는 그나마 나은 수준이지만, 지난 7월은 전 세계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달로 기록됐다. 물관리 정책에서 기존의 구조적 인프라를 잘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연기반 해법을 활용한 재난 대비가 생물다양성 협약과 기후변화 협약 모두에서 주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기후변화 적응과 완화를 위해 자연기반 해법이라는 새로운 길을 달려야 할 때 한국은 근거 없이 무조건 강을 준설하고, 새로운 댐을 만들며, 4대강 보가 만병통치약이라는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물관리 정책을 뒤흔들고 있다.
달리기 트랙을 이탈했다는 절망감에 휩싸인 나에게 다시 성우가 힘차게 외친다. “포기하고 싶은가요? 꾸준한 달리기는 여러분을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달리기 트랙보다도 기초체력일지 모르겠다. 트랙 밖 울퉁불퉁한 현안을 잘못 디디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니 발은 조심조심 내딛더라도, 시야는 목적지를 향해 멀리 보고 길게 보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여정은 길기 때문이다. 힘내서 달려보자. 대회 수상이 목적이 아니라면 빨리 달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꾸준히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속력도 나아지지 않겠는가. 운동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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