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83) 서울중앙우체국 앞 육교
환청이 들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육교를 건너는 1971년 사진에서 “빨리빨리! 비켜비켜! 바쁘다 바빠”. 남들보다 앞서 가려는 사람들의 소리다. 사진 왼쪽이 한국은행, 오른쪽은 서울중앙우체국이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신세계백화점이 뒤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은행, 경성우편국, 미츠코시백화점이었고, 이곳으로 전차가 다녔다. 건물명만으로도 북적거리는 인파가 피부에 와 닿는다.
1971년 서울중앙우체국을 판독하면 “밀린 세금 내라”는 재촉소리도 들린다. 건물 우측에 부착된 한문표어 ‘滯納國(체납국)’의 마지막 글자는 사진에서 보이지 않지만 짐작건대 滯納國稅(체납국세)다.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은 체납 세금을 내라는 거다. 고풍스러운 명동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콘크리트로 지어진 서울중앙우체국은 취미가 ‘우표수집’인 학생에게는 기념우표 구매의 메카였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위해 “중단 없는 전진”을 외치며 1966년부터 서울시내에 육교를 세웠다. 횡단보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 보행육교를 만든 것이다. 이 중 하나가 서울중앙우체국과 신세계백화점을 잇는 1971년 사진에 등장하는 육교다. 육교의 설치 목적은 ‘중단 없는 전진’ 구호에 걸맞게 자동차의 원활한 흐름이었다. 횡단보도의 교통신호에 질주하던 차량이 멈춰서는 안 된다. 육교를 ‘구름다리’라고 불렀는데 노약자나 휠체어, 목발을 사용하는 신체적 약자들에게 육교는 구름도 울고 넘는 높은 산이었다. 특히 눈이 내리면 빙판으로 변하는 육교계단에서 낙상사고도 빈번했다. ‘약자들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박정희 파시즘 시절에 인권(人權)은 차권(車權)보다 아래에 있었다.
1971년 사진과 같은 위치에서 찍은 2023년 사진을 보면 육교는 사라지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2층 관광버스도 지나간다. 서울중앙우체국 외형도 알파벳 ‘M’을 형상화한 최첨단 포스트타워로 변모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며 분주히 살아간다. 전자우편 e메일 시대에 사람들이 편지를 쓰지 않아 빨간색 우체통은 점점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에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순간, 마음도 함께 동봉해서 보냈던 시절, 상대방이 편지를 잘 받았는지, 궁금해하며 답장을 기다렸던 그 시간이 좋았다. 삶의 속도를 줄이자.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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