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자·기자 동선 보고"...현대차 용역의 '사찰' 증언
(1편에서 계속: https://newstapa.org/article/AgNAK)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이 경비 용역을 동원해 본사 앞 집회·시위자는 물론 기자들까지 조직적으로 미행·감시하고 있다는 내부자 증언이 나왔다. 현대차가 지휘하는 ‘민간인 사찰팀’의 존재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뉴스타파는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옥에서 경비 용역으로 일했던 A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보고라는 걸 해요. 저희가 24시간 보고라는 걸 하는데 시위자들의 위치, 동선이라든가 하다 못해 시위자들이 일어섰다 앉았다, 스피커를 켰다 껐다, 기자들이 왔다, 아니면 누가 왔거나 노조들이 추가로 또 왔거나 이런 일이 있으면 보고를 다 하고… 애초에 저희가 진짜 밥 먹는 것까지 따라 다니거든요. 밥 먹는 것까지 따라가서 다 보고를 해요.
- - 현대차 가짜집회 경비용역 관계자 A씨
현대차그룹은 지난 13년간 외부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고 경호원 등 경비용역들을 집회 참가자로 꾸며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기아차 명의로 관할인 서초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365일 내고, 본사 앞 인도 및 주변지역을 독점해 24시간 용역들을 배치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집회 참가 인원을 많게는 하루 270명까지 부풀려 신고해 왔다. 2018년 법원은 현대차 집회를 “오로지 다른 집회의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장소를 선점할 목적으로 옥외집회에 대한 신고제도를 남용”한 가짜 집회라 판단했었다.
“박미희 놓치면 비상 걸린다”...사찰팀 미행·감시
뉴스타파 취재 결과 경비 용역들, 이른바 ‘검은 옷 청년들’의 임무는 현대차가 신고·주관하는 본사 앞 가짜 집회에 참가해 지정 구역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민간인은 물론 기자들을 사실상 사찰하는 일도 맡았다. 현대차그룹 경비용역으로 일했던 A씨는 인터뷰에서 “순찰자라고 부르는 팀이 있다”고 증언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순찰자, 즉 사찰팀은 2~4명으로 조직돼 운영되고 있다. 주요 감시 대상은 박미희 씨다. 박 씨는 기아차 대리점 판매원(딜러)로 일하다 2013년 대리점의 부당 판매행위 비리를 기아차 본사 임원에게 내부고발한 뒤 해고됐다. 박 씨는 현재까지 10년째 현대차 본사 사옥 앞에서 원직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다.
현대차그룹 경비용역 사찰팀은 박 씨는 물론 박 씨와 함께 집회에 참가하는 동료들의 동선과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다. A씨는 “사찰팀이 박미희 씨와 동료들을 따라 다닌다”고 증언했다. 미행한다는 것이다. A씨는 “(박미희 씨가) 차에 타면 차에 탔다, 자면 잔다, 밥을 먹으러 갔으면 어디 식당으로 갔다고 보고한다”고 했다. 박 씨의 동선을 놓치면 경비용역들 사이에 비상이 걸린다고 했다.
갑자기 차를 타고 (시위자들이) 집에 갔는데, 만약 원래 주차해 둔 자리에 박미희 씨가 없으면 저희는 비상 상황이 걸려요. CCTV도 일단 돌려봐야 되고 어디로 갔는지 확인을 해야 되고… 만약에 그분이 집에 안 가고 몰래 숨어서 다른 짓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쪽 구석에 가서 돗자리 같은 거라도 편다거나 그러면 저희는 이제 큰일이 나니까.
- -현대차 가짜집회 경비용역 관계자 A씨
A씨는 현대차그룹으로부터 기자들의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넘겨 받아 관리한다고도 했다. 기자들이 위장 취업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도 보고 대상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런 분(기자)들 많아요. 알바로 위장 취업해서 들어오는 기자들이 많은데 그것도 하루면 다 발각이 돼요. 저희가 기자들 번호를 싹 다 갖고 있어요. 그래서 알바분들이 오시면 일단 번호부터 검색해요. 기자가 있나 조회해요.
- -현대차 가짜집회 경비용역 관계자 A씨
현대차그룹의 가짜 집회에 참가하는 경비업체 직원, 일용직들은 주로 검은 색 복장을 갖춘다. 그러나 사찰팀은 다르다. A씨는 “(사찰팀은) 보통 검은색 옷보다는 흰색 옷이나 다른 색 옷을 입고 시위자들(박미희 씨 등)이 움직이면 같이 따라다닌다”고 했다. 또 “(사찰팀은) 최대한 일반인처럼 보이게 옷을 입고, 미행과 감시가 들키지 않도록 움직인다”고 했다.
사찰팀 임무는 현대차그룹과 계약한 경비업체 직원 가운데 상급직원인 실장급이 주로 맡는다고 한다. A씨가 지목한 ‘실장’은 가짜 집회에서 참가 근무자들을 직접 지휘하고 보고받는 현장 책임자다. 내부에서는 흔히 ‘인솔자’로 불린다고 한다. 실장(인솔자)은 현대차그룹 보안팀과 직접 소통하면서 지시를 받는다. 박미희 씨 같은 본사 앞 시위자나 민원인 사찰 임무의 지휘·보고 체계에 현대차그룹 내부 책임자가 직접 개입해 있다고 볼 여지가 큰 이유다.
대기업의 사찰, 책임자 징계부터 형사처벌까지
대기업의 이해관계자 감시, 사찰 행위는 과거에도 종종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2015년에는 삼성물산 고객만족팀이 주주총회 당일 1인 시위 등으로 장기간 삼성물산에 민원을 제기했던 주주 강모 씨를 미행·감시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같은 날, 삼성물산의 경비·보안용역을 맡은 삼성에스원의 직원도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사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민원인 당사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사찰 사건 보고 라인에 있던 책임자인 주택본부장이 보직 해임됐다.
2010년에는 삼성물산 감사팀 부장 등 직원들이 이재현 CJ 회장을 조직적으로 미행하다 적발돼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시위자 사찰 사실이 있는지 묻는 뉴스타파 취재팀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뉴스타파 김지윤 jiyoon@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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