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게 울고 싶은 날, 車가 떠나가라 들국화 '행진'을 불렀다
20대에 사회생활 시작하며 힘든 날 연속
야근 후 집 돌아오는 길에 들려오던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행진 하는 거야'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눈물 톡 터지고
나도 몰랐던 내안의 힘이 불끈 솟아올라
확신을 가지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던 길도 그 형체와 의미가 흐릿해지는 날들이 있다. 특히 몸이 고달프고 마음이 시달린 날들이 그렇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혼이 쏙 빠져버린 그런 날. 술 한잔에 나를 달래봐도 한번 흔들린 머리가 좀처럼 다시금 중심을 찾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음악이 가장 필요한 날은 바로 이런 날이다. 나의 내면에서 끌어낼 수 있는 힘이 고갈된 그런 날, 다른 어떤 이의 에너지를 수혈받아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음악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베토벤이 점점 어두워지는 청력에 낙담한 나머지 목숨을 끊고자 했던 마음을 다잡고 써 내려간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듣고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고, 차이콥스키 6번 교향곡의 ‘피날레’를 들으며 승리를 다짐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신나는 걸그룹·보이그룹의 팝 장르에 열광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할 테고, 힙합의 분노 가득한 라임과 그루브에 몸을 맡기며 모든 것을 잊고 내면을 충전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이런 날에는 꼭 들국화의 1집 앨범을 들어야 한다.
사실 12개 음으로 만들어진 음악만을 생각하도록 철저히 트레이닝돼 온 나에겐 조금 의아한 앨범이다. 거칠게 정제되지 않은 음정이 그렇고 음악적인 영향도 너무 많이 뒤섞여 있어 아리송한 순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엔 아찔한 힘이 있다. 순수하고 직접적인 고백으로 가득한 이런 말을 들어야만 하는 날들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20대 후반, 감당하기 힘든 나날들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이들이 그렇듯 사람 간의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해 마음이 힘들었고,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업무들도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그저 몸을 갈아 넣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도무지 뭐가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달까. 그때는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한 시간 정도 차로 운전해야 하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장거리라도 운전해서 가는 것이 마음이 편했기에 연주도 운전해서 가는 일이 잦았다. 잠자는 시간도 아껴 쓰던 날들이라 자연스럽게 밤늦은 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기나긴 하루 지나고 / 대지 위에 어둠이 / 오늘이 끝남을 말해 주는데 / 오늘의 공허를 메우지 못해 / 또 내일로 미뤄야겠네 / 꿈속에 내 영혼 쉬어 갈 사랑 찾아서 /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 내 몸 쉬어 가면 / 사랑하는 여인을 꿈속에 만날까 / 육신의 피로함은 풀리겠지만 / 내 영혼의 고난은 메워질까 / 꿈속에 내 영혼 쉬어갈 / 사랑, 사랑 찾아서 /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 내 몸, 내 몸 쉬어 가면 / 사랑하는 여인을 꿈속에 만날까
이 가사를 차가 떠나가라 부르며, 나는 그 나날들을 견뎠다. 오늘을 버티면, 조금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 때문에. 그 믿음은 과연 사실이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과연 그 나날들이 내가 이루고자 했던 모습에 나를 가까이 데려다줬는지. 하지만 어쨌든 음악은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가 지나가면 앨범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행진’을 나에게 선물한다.
나의 미래는 /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 난 노래할 거야 매일 그대와 /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가히 백만 번 반복되는 듯한 ‘행진’이란 단어를 소리치다 보면 내 안에서 몰랐던 힘이 솟아오르곤 했다. 마치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외쳐주는 행진곡 같았다. 그 응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의 피로도, 마음의 힘듦도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다음, ‘들국화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 하지만 후횐 없지 / 울며 웃던 모든 꿈 / 그것만이 내 세상 / 하지만 후횐 없어 / 찾아 헤맨 모든 꿈 / 그것만이 내 세상 / 그것만이 내 세상
결국 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외치며 많이도 울었다. 가장 힘든 날, 가장 괴로운 날, 이 노래를 듣고 불렀다. 이렇게 ‘내 세상’을 만드는 것은 고달픈 일이지만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단지 ‘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꿈,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꿈. 그것을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그 외의 것은 전혀 내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아닌 것이다. 애정이 없어서라기보다, 그 외의 일들은 내 능력 밖의 일들이기 때문이다.
음악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일 뿐이야”라는 가사처럼, 목청 높여 사랑을 노래하는 것뿐이다. 그렇다. 음악은 그저, 사랑일 뿐이니까.
조진주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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