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해주세요" 유명 맛집 공들이는 백화점
줄 서는 맛집 유치 더 공들여
고객 불러모으기 핵심요소로
수년 러브콜, 요구에 적극협조
‘대단한 브랜드’를 모시기 위해 콧대 높은 백화점들이 1년 넘게 줄 섰다. 한번 팔면 ‘억’ 소리 난다는 명품 이야기가 아니다. 오픈런을 부르는 ‘맛집’을 들이기 위해 백화점들이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3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오는 5일 잠실 롯데월드몰 1층에 약 200㎡(60평) 규모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하 런던 베이글)’이 문을 연다. 런던 베이글은 2021년 안국점에 오픈한 후 ‘줄 서는 맛집’으로 화제를 모은 베이글 전문점으로 이곳이 로드샵이 아닌 대형 유통시설에 입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이나 롯데백화점 베이커리&디저트 바이어는 수년의 삼고초려 끝에 ‘오케이’ 답변을 받아냈다. 윤 바이어는 “런던 베이글과 같은 계열인 카페 레이어드를 통해 (런던베이글 론칭 전인) 2019년부터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거절만 수십 번 당했다”며 “롯데백화점의 상품 기획 방향과 비전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은 브랜드의 까다로운 인테리어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며 입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통상 신규 식음(F&B) 매장이 들어설 때 인테리어에 2~3개월이 걸리지만, 런던베이글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의도된 흔적’,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6개월간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품 가구에 일부러 흠을 내거나 부숴 80~90년이 흐른 것 같은 감성을 담아내는가 하면 매장 벽도 오래된 진짜 벽돌을 구해 쌓아 올렸다.
현대백화점이 지난달 4일 압구정 본점 식품관에 문 연 쉬폰 케이크 전문점 ‘마사비스’도 연일 500개 준비 물량이 조기 완판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본점이 식품관을 전면 리뉴얼하면서 새로 들인 마사비스는 2021년 일본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지난해 시장 조사를 위해 도쿄를 방문한 김현우 현대백화점 F&B 바이어가 긴자식스 매장 앞 긴 대기 줄을 보고 수십분 기다려 맛본 뒤 1년 넘게 본사에 제안서를 보냈다. 끈질긴 설득에 마사비스 측은 올 초 직접 압구정 본점을 찾았고, 매장 위치와 주변 상권 등을 둘러본 뒤 입점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마사비스는 조리 인력의 지속적인 연구·훈련과 함께 ‘현장 퍼포먼스’ 공간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했다. 마사비스는 쉬폰 케이크 위에 메뉴(맛)별 캐러멜과 토핑을 뿌리는 일명 ‘드립핑 아이싱’ 제작을 현장에서 진행한다. 고객들은 주문 후 직원들이 케이크에 새 옷을 입히는 과정을 투명 유리 하나를 가운데 두고 볼 수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상품을 예쁘게 진열하는 수동적인 판매방식보다는 현장 퍼포먼스가 있어야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는 게 마사비스의 생각”이라며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퍼포먼스를 하게 해달라는 게 요청 사항이었다”고 전했다. 한국 첫 매장의 순풍에 마사비스는 로드샵 형태의 2호점도 계획하고 있다.
백화점이 수차례의 거절에도 러브콜을 보내고, 예외까지 둬가며 식음 브랜드를 유치하려 하는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백화점 식품관 내 개별 코너는 매장별로 규격화된 면적과 통일된 인테리어 기준 등을 따라야 했다. 백화점이라는 ‘큰 물’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혜택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널과 상관없이 줄 서는 맛집이 잇따라 탄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영업시간이나 운영 방식, 임대료 등에 제약이 있는 계약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곳들이 나오고, 백화점들이 이들을 모시기 위해 수년간 공을 들이는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바이어들은 더 많이 발품을 팔게 됐다. 신세계(004170)백화점의 조창희 바이어는 2021년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 오픈 당시 코로나19 장기화로 서울 브랜드의 지방 출점이 꺼려지는 시기에도 서울의 유명 맛집을 잇따라 푸드코트에 입점시켰다. 당시 조 바이어는 2020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객들의 주문이 집중되는 유명 맛집과 특징 등을 파악하며 시장 조사를 했고, 이후 식품 담당 임원, 팀장까지 대동해 해당 매장을 찾아 수차례 설득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20대가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한 가운데 백화점들이 집객을 위해 F&B를 강화하면서 이 같은 경향은 짙어지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F&B는 효과가 즉각적인 데다 가격 면에서 소비자에게 저항감이 덜한 편”이라며 “장기적으로 ‘트렌디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F&B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음료 1000잔 파느니 샤넬 백 1개 파는 게 낫다’는 게 과거의 사고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상권 따라 F&B로 ‘백화점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고, 이렇게 모은 고객들에게서 추가 구매 등의 분수 효과를 겨냥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오픈 2년 차에 매출 1조 원을 넘보는 단계(9770억 원)로 급성장한 ‘더현대 서울’이 이 전략으로 성공 사례를 쓰자 다른 백화점·점포들의 변화 속도도 빨라지는 모양새다. 백화점의 식품관 리뉴얼 및 신규 브랜드 유치 등에 힘입어 F&B 부문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올 1~7월 식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각각 13.6%, 16.3% 신장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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