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4개의 수조 속 처절한 몸부림"… "접촉하며 이해하는 타인의 삶"

디지털뉴스부 2023. 8. 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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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듯 부르는 '엘리펀츠 라프'
다양한 커뮤니티 속 사람들 조명
수조로 죽음과 삶의 경계 나타내
편견들 마주… 관객 공감 이끌어
이진엽
물질 공연사진 (c)장석현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코끼리들이 웃는다 공연 '물질' 연출가 이진엽

타인의 삶과 이야기가 연결되는 예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연출가. 수조가 등장한 무대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를까.

대화를 나누면서 이진엽은 하나의 특정한 어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소수자'. 그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표현해야 할 때면 '커뮤니티'라는 단어로 대체하여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가 나눈 한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분들은 소위 '소수'라 일컫는 사람들에 가깝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사회가 부르는 방식대로 칭하는 것이 오히려 경계를 긋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서울문화재단 발행 '춤in' 중 '빛이 없는 세계에 초대합니다.')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덕에, 그의 '커뮤니티'라는 표현은 인터뷰 중 자연스레 기자에게 전해졌다. 물을 통한 타인과의 연결을 주제로 하는 '물질' 공연의 연출자가 가진 노련함일까. 그와의 인터뷰는 얕은 물에서 시나브로 깊은 물로 빠져들었다. 짧은 시간의 대화인데도, 관객참여형 공연을 중심으로 연출하는 이진엽은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질문에 명확하고 진솔하게 답변했다.

-단체 이름('코끼리들이 웃는다')이 독특해요. 왜 웃는 걸까요?

"영국에서 유학한 후 영어로 단체명을 짓는데, 사람들이 제 단체 이름을 부를 때 노래를 부르는 느낌을 얻었으면 했어요. '엘리펀츠 라프(Elephants laugh)'라고 하면 오르내리는 억양이 생기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했더니 '코끼리들이 웃는다'가 됐습니다."

-이처럼 재밌는 억양에서 태어난 단체의 실질적인 창단 과정은 어떠했나요?

"영국에서 유학할 때 전공은 무대디자인이었고, 졸업 공연에서는 오페라를 올렸어요. 하지만 오페라는 영국에서도 상위층의 문화고, 유명하지도 않았죠. 그때 저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고 싶었고, 그렇다면 야외로 무대를 옮겨야 했어요. 귀국 후에 첫 무대 작업을 할 때가 결정적이었죠. 무대 작업을 하며 청계천에 있는 사장님께 소품을 맡겼는데, 그분은 소품 작업하시면서도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그때 거리공연과 관객참여형 공연을 주로 하는 단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창단 멤버는 누구였나요?

"혼자 시작했습니다.(웃음) 다만, 극단 '호모루덴스'의 남긍호 대표와 일하고 있었기에 그곳 배우들과 함께 협업하며 시작할 수 있었죠. 저희가 극단이라는 표현을 안 쓰는 이유는 고정된 단원들로 공연을 올리지 않고, 모든 단원이 전업 배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온 공연들이 매우 다양한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네요!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주제를 선택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20대 때는 오히려 사회적인 이슈를 외면하려고 했어요. 신문을 볼 때면 힘든 이야기가 많으니, 밝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죠. 그렇게 청계천에서 첫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대화를 나누는 모든 이의 삶에 모든 것들이 사회 이슈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다양한 커뮤니티 속에서 사회의 문제들, 바뀌어야 하는 것들을 마주하게 됐고, 그래서 사회 이슈를 놓을 수 없었어요. '이걸 정말 해야 한다'라는 마음이 아니라,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제 작업에 그걸 담게 됐죠. 사실, 놀라워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게."

-다양한 커뮤니티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이 가면서도 한편으로 지금까지 선보인 작업에는 진입 장벽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최근 작품인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의 경우 관객은 관람을 위해 미리 안무를 익히고, 드레스코드를 맞춰 가야 했어요.

"관객 참여 공연에는 반드시 관객이 마음을 열수 있는 워밍업이 필요해요.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 한 공연의 3분의 2를 워밍업에 써야 할 때도 있죠. 그 준비시간이 필요 없는 관객과 우리는 같은 시간 동안 어느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모두를 그곳까지 데려가고 싶지만, 선택을 해야 하더라고요."-그 지점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가 됐나요?

"어느 정도 해소됐습니다.(웃음) 공연을 만들 때 관객의 참여를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이 정도의 반응이겠지?'라고 예상하면 관객은 언제나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저희도 다시 '이 정도'를 높게 올리는데, '그 이상'도 따라 올라가요."

◇실내로 들어 온 또 다른 '물질'

-그래서 버전이 다양한 걸까요? 이번 '싱크 넥스트 23'에서 선보이는 '물질'은 '물질 1'과 '물질 2'로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코끼리들이 웃는다'가 선보인 공연 중 국내·외에서 가장 많이 공연됐고요. 그때마다 공연의 성격이 변했나요?

"형식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물질 1'에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비극에 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주도 해녀들의 삶을 들으며 영감을 얻어 시작 했는데요. 그들은 물질을 하러 들어갈 때면 '죽으러 들어갔다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생각한대요. 모든 사람이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삶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물질 2'에서는 안산에 있는 난민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는 '헬조선'이라고 칭하며 나가고 싶은 나라에 희망을 품고 오는 사람들이에요. 작년 스페인 공연에서는 퀴어 문화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죠. 이런 다양한 커뮤니티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네 개의 수조를 두는 공연 형식은 늘 유지합니다."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작업 속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제게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을 건넬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커뮤니티 작업을 통해 편견들이 계속 무너지지만, 늘어나기도 합니다. 저도 몰랐던 본능을 계속 마주하게 되거든요. 그들을 만나면 계속 그런 본능을 드러내게 되고, 그걸 인식하게 되고, 그렇게 바뀌어 가게 되죠."

-더욱 그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이야기네요.

"맞아요. 함께하는 관객이 그래서 너무 중요하죠.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을 만나면서 제 부끄러운 질문들을 풀어나가는 거죠. 정말 많이 배우게 됩니다. '물질'로 배우게 된 것도 많죠. 커뮤니티에는 힘이 있어요."

-'물질' 공연은 지역에서도 계속 될 텐데요. 관객은 어떤 커뮤니티를 만나게 될까요?

"공연하는 지역마다 커뮤니티가 조금씩 다릅니다. '싱크 넥스트 23'에서는 난민, 창원에서는 다문화가족, 광주에서는 난민 중에서도 고려인 난민이에요. 다른 지역은 아직 고민 중입니다."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3'에서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물질'은 야외 공연 외에 영상 전시도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시선의 통제권이 카메라에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가져야 했고, 새로움이 많이 가미 됐어요. 이번 '싱크 넥스트 23' 시리즈의 하나로 선보이는 '물질'은 배리어프리 공연입니다. 대사가 없기에 어떻게 음성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고, 이건 또 다른 버전의 '물질'이 되겠죠. 기대됩니다."

글=월간객석 이의정 기자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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