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검사' 입주민한테만 통보… 반쪽 조치에 불안 여전

연규욱 기자(Qyon@mk.co.kr) 2023. 8. 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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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개 단지 전수조사 착수
무량판 거주동 단지 105개
10~15개 기둥 샘플 조사후
철근누락 발견시 전체 조사
"주민 동의 없으면 안할수도"
"주거동은 안전검증 끝나
괜한 혼란만 불러" 지적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무량판 구조 부실시공 사태 후속조치로 3일 국토교통부가 25만가구에 해당하는 전국 293개 단지를 두 달 만에 전수조사한다는 계획을 꺼내들었다. 이르면 다음주부터 대상 단지가 입주민들에게 통보될 예정이다. LH와 같은 철근 누락이 민간 아파트에서도 발견될 시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번 민간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대상 단지는 전국 총 293곳이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 105곳,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가 188곳이다. 입주자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단지들은 이르면 다음주부터 통보될 예정이다. 이미 준공된 단지들에 대해 국토부는 입주예정자(수분양자)에게 관련 사실을 알릴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조사 방식은 크게 '안전진단 업체 선정→구조도면, 설계도서 등 서류 검토 →현장에서 샘플 기둥 조사→(철근 누락 등 문제 발견 시) 전체 기둥 조사'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샘플 조사는 '설계도면상 가장 취약할 것으로 분석되는 기둥'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기둥에 철근보강근 등이 제대로 배근됐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단지 규모에 따라 다르겠으나 단지마다 약 10~15개 기둥을 샘플로 검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거동의 경우 점검원이 집 안으로 들어가 벽을 일부 허물고 기둥을 검사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물론 개별 가구의 동의 하에 샘플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샘플조사에선 철근 누락뿐 아니라 콘크리트 강도 등 안전에 관한 모든 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샘플조사에서 결함이 발견되면 모든 기둥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점검 결과 보수·보강이 필요한 경우 해당 단지를 지은 시공사 비용으로 보수공사를 진행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입주민 재산권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중요한 문제인 만큼 국토부는 주민 동의를 전제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낙인 효과 등 이유로 입주민들이 전체적으로 조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괄적인 조사계획은 발표됐으나 국토부가 지나치게 섣불리 민간 아파트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들은 전국에 무량판 구조 아파트가 정확히 몇 곳이 있는지에 대한 현황 조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293개 단지는 1차적으로 취합된 물량으로, 국토부 관계자는 "조사대상 단지 수는 진행 과정에서 변동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를 맡을 전문업체를 아직 선정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9월 말이라는 다소 버거워보이는 목표 시기를 발표한 점은 지나치게 무리한 일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을 전수조사한 LH가 17개의 점검기관에 의뢰해 91개 단지의 주차장을 조사하는 데 약 3개월이 소요됐다. 그런데 국토부는 293개 단지를 9월 말까지, 단 두 달 만에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몇 곳의 전문안전점검기관을 선정할지 정해놓은 상황은 아니다"면서 "현장 상황을 보면서 최대한 많은 업체와 인력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들은 안전점검기관이 이미 자체적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다음주부터 점검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입주민들에게 점검 대상 여부를 알리지만 아직 완공이 안된 단지들의 입주예정자에게는 알리지 않는 점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점검 결과 단순 보수만 필요하다면 굳이 입주예정자들과 협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일단 점검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대상 단지들을 지은 시공사들 역시 점검이 시작되기 전까지 해당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의 불만은 거세다. 무량판 구조 아파트 단지들을 다량 시공한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벽식과 무량판의 혼합식이 대부분인 주거동 무량판은 '벽'이 충분히 하중을 버텨내기 때문에 전단보강근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며 "정부가 '무량판 구조=불안전'이라는 이미지를 키우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혼합식 구조를 죄다 들춰낸다니 전국 곳곳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며 "하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를 하면서 그 비용까지 시공사들이 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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