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안전 관리하는데도···1년이면 애물단지 될 '방사능 검사 시설'에 지자체 수십억 펑펑

세종=이준형 기자 2023. 8. 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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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오염수 대처' 엇박자
정부 방사능 검사장비 131억 투입
여수시 14억 들여 자체 장비 마련
경기도 대당 1억 LED전광판 설치
지자체 재정자립도 50% 밑도는데
결국 중앙정부에 청구서 내밀 듯
전문가 "교부세로 전시행정 통제"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가 한 활어도매업체에서 방사능 검사를 위해 일본산 참돔을 시료채취 봉투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전남 여수시가 55억 원을 들여 ‘수산물안전센터’를 건립하려는 것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수산물 소비심리 위축으로 지역 내 수산업은 물론 관광업까지 잇따라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26년 개최될 예정인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앞두고 지역 수산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구축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대응 자체가 과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문가의 판단을 근거로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안전에 영향이 없음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소비자의 불안이 여전하자 올 6월에는 수산물 방사능 검사 장비 확충에 예비비 131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더구나 해양수산부는 이미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전담한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수품원은 여수시가 수산물안전센터를 건립하려는 여수에도 사무소를 두고 있다. 여수시가 자체적으로 14억 원을 들여 확보하려는 방사능 검사 장비(감마핵종분석기 등)가 일종의 중복·과잉 투자로, 혈세 낭비의 성격이 있다는 의미다. 수품원을 활용하면 되므로 굳이 자체 시설을 둘 이유가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다른 지자체도 경쟁적으로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설비 구축에 나서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경기도의 경우 9월부터 연말까지 궁평항·전곡항·오이도항 등 5개 항포구 외부에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LED 전광판 1개당 설치비는 약 1억 원으로 수산물 방사능 검사 결과가 표시된다. 경기도는 주요 항포구 수산물 판매장 내부에 별도의 LED 전광판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수산물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염수 논란이 가라앉으면 곳곳에 설치한 LED 전광판 자체가 흉물이 되지 않겠느냐”며 “생색내기에 가까운 전시 행정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가뜩이나 세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정책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자체별로 오염수 대응 시설을 구축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국내 수산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중앙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지자체별 세부 정책 기조는 확인하지 못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자체의 현명하지 못한 예산 집행은 재정자립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243개 광역·기초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5.02%(2023년 6월 기준)다. 전체 예산에서 지방세 등 자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여수시의 재정자립도는 26.87%로 전국 평균치(45.02%)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낮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수시의 재정자립도는 눈에 띄게 낮은 수준”이라며 “불필요한 전시 행정은 혈세 낭비와 재정 건전성 악화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중앙정부에 또 손을 벌린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중앙정부의 허리를 휘게 한다”고 덧붙였다.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시설이 매년 수억 원의 운영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국내 수산물 소비 위축 기간은 3~4개월에 그쳤다. 이는 정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란이 이르면 연내 진화될 것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한 행사장에서 “(오염수 논란은)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시설이 당장 내년부터 ‘유령 시설’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경남 거제시가 2011년에 추진한 ‘1592 거북선’ 사업은 제대로 된 사용처를 찾지 못해 결국 지난달 해체됐다. 전남 광양시가 113억 원을 들여 조성한 ‘백운제 테마공원’은 2018년 축구장 11개 넓이의 캠핑장과 수영장이 완공됐지만 아직 문도 열지 못했다. 서울시가 1109억 원을 투입해 만든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2022년 개통 후 1년 만에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석 교수는 “정부가 지방교부세 등을 활용해 지자체의 전시 행정을 적극 통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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