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대경제범죄 수사협조자에 형벌 감면 확대해야
2009년 개봉한 한국형 증권사기 영화 '작전'은 지난 4월 'SG증권 사태'로 현실이 됐다. 주가 조작 일당들의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범행은 한국거래소 등 관계 기관의 시장 감시 시스템을 무력화시켰다. 이들의 행위는 자본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불공정 거래이며 현행법상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하지만 형사처벌은 쉽지 않다. 불공정 거래의 행위책임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한데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주가 조작 범행에 관한 양형이나 부당이득 몰수가 어려워 '감옥 가도 남는 장사'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유사 범죄가 반복돼 왔다.
개정 자본시장법은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법제화하고, 과징금 제재를 신설함으로써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경제적 행정제재를 가능하게 했다. 불공정 거래행위를 자진 신고하거나 다른 가담자의 범행에 대해 진술·증언하는 경우 형벌이나 과징금이 감면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이를 통해 '솜방망이 처벌' 등 증권범죄 처벌의 고질적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간 '은밀하게 위대하게' 진행된 주가 조작 범죄의 전모를 밝히고, 범행에 상응하는 처벌을 위해 가담자의 진술 등 수사 협조를 유인할 동인이 생긴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개정 자본시장법은 형식적인 신고나 사후 범죄 발견 등을 전제하지 않고, 이미 수사망에 포착된 내부자의 진술이나 증거 제공에도 형벌 감면이 가능하도록 해 진일보한 규정이다. 그런데, 형벌 감면을 법원의 재량으로 남겨둠으로써 수사 협조에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수사 단계에서 이 규정을 근거로 수사협조자에 대해 형벌 감면을 공식화하고 형벌 감면 협의를 관철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리고 자본시장법처럼 개별법에 수사협조자 형벌 감면 규정을 두는 입법 정책은 향후 예외적 특별 규정의 양산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차제에 기소를 전담하는 검사가 책임지거나 협상할 수 있도록 형사 절차 일반법인 형사소송법에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법원이 통제하거나 참여하는 방안의 제도 개선이 국민들을 위해서나 형사법 체계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일각에서는 유죄 협상에 따른 형의 감면을 영미법상 플리바게닝이라며 우려하고 있으나, 오늘날 유죄협상제는 영미법의 전유물이 아니다. 2000년대 이래 유수의 국가들도 초국가적 조직범죄의 실효적 대응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2016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증거 수집 등의 협력 및 소추에 관한 합의' '형사면책'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독일은 1981년 마약범죄에 시범적으로 운영하다가 2009년 형법상 중대 범죄 일반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주가 조작을 비롯한 증권범죄 외에 무자본 인수·합병(M&A) 등 금융·자본시장에서 기업을 무대로 자행되는 조직적 경제범죄에도 내부자의 수사 협조를 유도할 제도가 필요하다. 증권범죄 수사협조자 감면 규정 도입을 계기로 다른 중대 경제범죄에 대해서도 이 제도의 적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 사법제도와 유사한 일본의 규정을 참고해 검사와 수사협조자 간 감면 협의를 공식화하고, 내부증언자는 면책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 적법 절차 원칙 안에서 수사상 협조를 활성화함으로써 조직적 경제범죄에 형사사법적 대응 역량이 강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경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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