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교육은 서비스가 아니다
교사는 시중드는 존재 됐고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 상실
사회의 인적 인프라가 흔들
서울 한복판, 근조 화환 수십 개가 건물 앞마당에 조객처럼 도열해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기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가 죽은 걸까. 곧이어 며칠 전 보았던 기사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서둘러 어떤 건물인지 확인해보았다. 추측이 맞았다. 그곳은 서울특별시교육청이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면 스물셋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교사를 추모하는 장문의 글을 볼 수 있다. 찬찬히 읽어보았다. 교사의 교육 활동을 침해하고 생활지도권을 무력화시키는 악성 민원과 고소가 난무하는 현 교육 현장에 대한 개탄과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맘 카페에 접속해보았다. 눈에 띄는 게시물이 있었다. '진상 학부모 체크리스트'였다. 총 11개의 항목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는지 체크해보는 리스트였다. '정말 급할 때는 늦은 시각에 연락할 수도 있다' '애 안 낳고 안 키워본 사람은 부모 심정을 모른다' '우리 애는 예민하지만 친절하게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등등 대부분의 학부모가 자신의 입장과 아이만 우선시하는 태도를 내보이는 언행들이었다. 댓글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하겠다는 다짐과 자신의 행동이 진상에 속하는지 몰랐다는 반성이었다.
언제부터 학부모들은 교사에게서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내려는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 나는 1980년대 후반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그 시대엔 잘못을 저지른 학생은 강한 체벌을 받았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기도 했다. 학교는 그 어떤 장소보다 순종과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곳이었기에 때로는 은근한 반항심이 치솟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교사의 관심과 보호 아래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뒤로 학교가 아닌 일터로 출근하는 나이가 되면서 학교는 나의 일상에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러나 학교를 일터로 선택한 친구들에게 학교는 어느샌가 다른 의미의 장소로 변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쪽지를 돌리면서 키득거리고 웃는 거야. 쪽지를 압수해서 읽어봤더니, 내 외모에 대해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적어놨더라. 수업 끝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기간제 교사였던 그는 그 일을 그냥 덮고 지나갔다. 다른 친구가 말했다.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후보로 남아 있던 아이가 있었어. 근데 학부모가 민원 전화를 계속 걸어서 결국 후보 학생들을 전부 다 수업에 넣어줬어. 그랬더니 다시 민원 전화가 오는 거야. 자기 아이만 넣어주지 다른 아이는 왜 넣어준 거냐고." 그때 나는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을 뿐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무감했고, 무지했다.
'교육 서비스'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이다. '서비스'의 사전적 정의엔 이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듦'. 교육은 서비스가 아니다. 교육을 그런 종류의 서비스로 생각할 때 교사는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존재가 되고, 학부모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손님이 된다. 악성 민원을 넣는 이들의 태도를 면밀히 살펴보면 놀랍게도 이런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사는 당연히 학부모의 시중을 드는 존재가 아니고, 단순히 지식 제공의 노무를 행하는 자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배려심과 지성을 가르치고, 좋은 사회를 이룩하는 데 필요한 인적 인프라의 뿌리를 설계해주는 이다. 교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없게 되면 아이들의 미래뿐 아니라 이 사회의 미래가 무너진다. 현 사태에 대한 국민의 울분이 반드시 교육 현장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이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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