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대한민국 ‘산불전쟁’ 합동작전…“전례없는 3국 공조”
넓은 면적·다른 식생에서 작업…“94% 산불 진화율 달성”
대원들 괴롭힌 흡혈파리…2시간 떨어진 지역에서도 응원
한국전 파병국에 도움 준 韓…“세계 재난 대응 중요한 담당”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역대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캐나다는 남한 면적의 약 1.3배에 달하는 1300만ha 면적이 타들어 갔다. 캐나다의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기간의 평균 피해 면적이 246만ha인 점을 감안할 때, 올해 피해는 1990년도 이래 최악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수도 오타와에서 북쪽으로 510km 떨어진 퀘벡주의 르벨 슈흐 께비용 지역은 주민 대피령만 두 번 내려질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 지역의 피해 면적은 7월 말 기준 약 63만ha, 여의도의 약 1400배 규모로,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의 10분의1 규모다.
일부 지역에서는 직접 불을 끈 작업이 어려워 자연 진화를 바라며 비가 오기만을 바라는 곳도 있을 정도였다.
KDRT 관계자는 “가로세로 100km씩 이어지는 구역이 산불로, 퀘벡주에만 이러한 불길이 여러 군데가 있었다”며 “직접 진화보다는 간접 진화 방식을 택하고 있었고, 워낙 규모가 크다보니 헬기도 규모있게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에서 캐나다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가운데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도 출동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긴급구호대 파견국이다.
이번 KDRT는 152명으로 구성돼 규모 면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인원이 파견됐다. 외교부 6명, 산림청 70명, 소방청 70명,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3명, 국립중앙의료원 3명이다.
한 달간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KDRT 대원들이 3일 외교부 기자들과 만났다.
숙영지에서 진화작업 지역까지 버스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 시간 반을 달려서야 도착했다. 우리와 식생환경이 다른 숲의 특성상 진화작업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KDRT에 따르면 캐나다의 나무는 뿌리가 지표면에 뻗어있는 특성이 있었다. 통상 땅속으로 뿌리가 내리는 것과 달랐다. 불길이 지표를 따라 번지면 뿌리가 쉽게 타버리고, 나무가 쉽게 쓰러져 작업 중 위험한 상황이 계속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진화작업 중 위험한 부분 중 하나가 나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가 여러 차례 내렸지만 땅 속 깊이 쌓인 화점은 일정한 조건이 되면 다시 불이 재발하는 원인이 됐다. 지표면 밑에 숨어있는 화점을 찾아 제거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작업도 필요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표면으로부터 깊게는 불이 흙은 타고 가기도 했다”며 “낙엽층(유기물층) 부분들이 계속 있어서 한 군데 불을 끄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르벨 슈흐 께비용 지역에 먼저 도착한 미국 긴급구호대의 작전지휘로 진화작업에 착수했다.
넓은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방식이었다. 불길이 민가로 넘어가지 않도록 전방에 중장비로 ‘브레이크 라인’을 만들고, 그 안쪽에 불을 피워서 불길이 왔을 때 ‘브레이크 라인’을 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불을 불로써 끄는 방식으로 실제 우리나라는 이런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제한되는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보편적으로 하는 산불 대응 방식이었다”며 “우리나라는 공중진화 위주로 신속하게 진화하는 반면, 면적이 넓은 미국과 캐나다는 미리 대비해 간접진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작업 방식은 140명의 산림청과 소방청 대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140명의 대원들은 20~25명씩 7개 팀으로 구성했고, 각각 미국과 한 팀을 이뤘다. 선진적인 재난대응 매뉴얼로 꼽히는 미국의 사고지휘시스템(ICS)의 지휘 통제를 받고, 우리나라 대원들이 중요 구성원으로 협력해 진화작업을 했다. 캐나다는 현장 대응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작전 수행에 있어서 미국이 상당 부분 앞선 시스템을 동등하게 협력관계를 이뤄서 해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대화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많았다”며 “전례 없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캐나다 현지에서, 미국과 한국이 팀을 이뤄 함께 재난에 대응하는 ‘미국-캐나다-대한민국’ 3국 공조한 경험은 상당히 뜻깊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재난 대응을 통해 안전한 지구촌을 가꿔나가는 데 중요한 담당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12시간씩, 월화수목금토일 내내 고된 진화작업을 해온 대원들을 괴롭힌 또다른 주범(?)은 퀘벡주에 서식하는 흑파리(Black Fly), 일명 ‘흡혈파리’였다.
포유류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흑파리는 심할 경우 쇼크가 올 수도 있었다. 무더위에 그물망을 쓰고 작업을 하지만, 망을 뚫고 들어오는 흑파리로 얼굴이 퉁퉁 붓고 진물이 나는 증상이 많았다고 한다.
의료팀 관계자는 “현장에서 1400여건의 진료를 했는데 가장 많은 증상이 벌레물림으로 70%였다”며 “작업 중에 발생한 자상 환자가 있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재난 앞에서 언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몬트리올에 사는 우리 동포 3명이 자원해 한국어와 불어, 영어를 통역 봉사를 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은 먼 곳에서 찾아온 대원들을 마음으로 응원했다. 지역에 사는 엘레나양은 아빠의 손을 잡고 대원들의 숙영지를 찾아와 한글로 감사하다고 쓴 손 편지를 대원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직접 만든 머핀과 기념품을 나눠주는 주민도 있었다.
현지 경찰서장은 두 차례 숙영지를 찾아 감사함을 표했고, 대원들이 떠나는 날에도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대원들에게 필요한 물품 지원을 담당한 코이카 직원들은 지역에서 2시간 떨어진 도시로 나가 벌레기피제 등을 공수했다. 코이카 관계자는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도 어떻게 다들 아시고 한국에서 캐나다를 돕기 위해 산불을 끄러 온 분들이라며 감사 인사를 건네주셨다”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한국으로 향하는 긴급구호대에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우리 군 수송기에 탑승했다. 지방 출장에서 오타와로 복귀하는 일정을 맞춰 군 수송기에 직접 방문한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저희 대원들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며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에 대원들이 마지막까지 임무에 최선을 다해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미국과 영국에 이은 3대 한국전 파병국으로, 2만6791명을 파병해 516명이 전사했고, 1212명이 부상을 입었다.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을 받았던 한국이 2023년 캐나다의 재난에 도움의 손길을 건넨 것이다.
권기환 긴급구호대장은 “좀처럼 꺼지지 않는 불과 늪지대, 해충이 득실한 환경이었지만 한 달간 미국과 캐나다와 작전을 수행하며 산불 진화율 94%를 달성했다”며 “퀘벡주 당국은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일상을 회복하게 해준 우리 해외긴급구호대의 활동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60주년을 맞은 핵심 우방국인 캐나다와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며 “산불 진화 현장에서는 한국전 파병국인 미국과 캐나다의 진화인력과 우리 대원들이 하나 돼 불과의 전쟁을 치렀다는 뜻깊은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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