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아파트 대책이 ‘노조 때리기?’···당정, 엉뚱한 희생양 찾기
정부·여당이 철근 누락 아파트 대책으로 이른바 ‘건폭 근절’ 때 동원했던 ‘노동조합 옥죄기’ 법안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 특혜 등이 주된 원인이 된 부실 시공 사태를 기회삼아 아전인수 격으로 노조 때리기에 나서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2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무량판 구조 아파트 부실 시공 사태 대책 중 하나로 ‘건설현장 정상화 5법’ 입법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5법’은 건설산업기본법·건설기계관리법·사법경찰직무법·채용절차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이른다.
이 법안들은 이른바 ‘건폭(건설현장 폭력) 근절’을 위해 이번 사태 이전부터 당정이 추진한 것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건폭’이라는 용어를 직접 만들어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지난 5월 정부와 여당이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를 논의한 자리에서 ‘건설현장 정상화 5법’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대표발의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채용·장비 사용 강요 등 행위가 발생한 경우 건설사업관리자 및 수급인에게 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시공을 방해하는 행위 금지 및 위반 시 처벌 근거를 명시했다. 김희국·이주환·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올해 각각 발의한 3건의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은 건설기계를 이용한 공사 방해, 금품 수수, 정당한 사유 없는 운송 거부 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역시 엄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은 국토교통부 및 그 소속기관 등에서 건설공사 관련 불법행위 조사·단속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사법경찰관리로 지명해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윤재옥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 114명이 지난 5월 발의에 참여한 채용절차법 개정안은 채용 강요에 대한 제재수준을 과태료에서 형사처벌로 강화하는 등 내용을 담았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다른 노조 및 노동자, 사용자에 대한 불법행위를 금지하고,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5법’ 가운데 이번 아파트 부실 시공과 직접 연관된 법안은 엄 의원이 지난달 대표발의한 또 다른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정도다. 이 법안은 불법하도급, 부실시공 시 형사처벌·행정처분 강화 및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제외하면 모두 노조, 특히 건설노조를 겨냥한 법안들이다. 지난 5월 민당정 협의회 당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건설 현장이 “무법천지”라며 “건폭은 근로자·사업자·국민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사회악”이라며 ‘5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정이 LH의 아파트 부실시공 논란 와중에 ‘건폭’ 근절 법안을 꺼내는 것은 부실 아파트 대책이라며 슬그머니 노조 압박 법안을 처리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많은 시민들이 부실 시공 사태로 불안해 하고 있는 상황을 정부·여당이 숙원 법안 처리의 기회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불어 노조 공격을 통해 이번 사태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향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화물연대·건설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을 통해 시민들의 노조혐오 정서를 불러일으켜 지지율 상승을 경험한 적이 있다.
건설노조는 이날 논평에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 노조 활동을 옭아매는 5법을 언급하고 있다”며 “잇따른 부실 시공 사태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통화에서 “부실 시공에 발주자·시공사·설계사·감리사 등 업체 외에 건설노동자들의 잘못이 드러난 게 없다”며 “오히려 정부가 노조 활동을 옭아매면서 건설 현장에서 감시 역할이 소홀해진 면이 있다”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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